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 김영찬 본문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김영찬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플라톤의 생각이 달랐겠지
삼각형 건물이 난세에 판을 치거나
골치 아픈 삼각형공리가
수시로 바뀌겠지
자동차 바퀴가 생각할 줄 안다면, 운전수는 곤혹스럽겠지
제발 좀 가자는 데로 가자!
타이어가 닳지 않는 곳으로만 굴러가겠지
담뱃불이 생각할 줄 안다면, 애인 있는 애연가는 애가 탈 것
담배연기가 눈을 찔러
새 애인이 등 돌린 뒤 본의 아니게
연막(煙幕) 친 길
우산이 생각할 줄 안다면, 비오는 날들을 더 많이 만들겠지
우산 속에 젖지 않을 것들만 모여들고
우산 밖에서 불빛은 꺼지겠지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글쎄 좀 큰일이야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닌 지구는 삼각형을 유지하려고
찌그러진 지구본이
바다로 떠난 배들을 대양의 꼭짓점 위로 내몰겠지
삼각뿔처럼 뾰쪽뾰쪽 허리가 아파도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누구한테 함부로 개떡 같은 삼각형 세상이 싫다고
투덜투덜 모서리 진 세상을
비난하겠어?
———
*“만일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그(삼각형)는 틀림없이 神을 삼각형으로 그릴 것”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반년간 《이상》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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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 충남 연기 출생. 외국어대 프랑스어과 졸업. 2002년 《문학마당》과 2003년 《정신과 표현》에 작품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투투섬에 안 간 이유』.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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