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북촌에 내리는 봄눈 / 정호승 본문
북촌에 내리는 봄눈
정호승
북촌에 내리는 봄눈에는 짜장면 냄새가 난다
봄눈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짜장면 배달 가는 소년이 골목 끝에서
천천히 넘어졌다 일어선다
북촌에 내리는 봄눈에는 봄이 없다
내려앉아야 할 지상의 봄길도 없고
긴 골목길이 있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나는 오늘 봄눈을 섞어 만든 짜장면 한 그릇
봄의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어한 아버지를 위하여
봄눈으로 만든 짜장면을 먹고
넘어졌다 일어선다
-정호승의 시 「북촌에 내리는 봄눈」을 읽고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토요일」)고 말한 사람은 마더 데레사였다.
인생을 여행에 빗대는 것은 인생을 사유하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겠으나, 여행의 경로가 ‘죽음’을 통과하고 있다면, 떠남의 대상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면, 목적지가 오로지 ‘당신’이라는 타인의 오지라고 한다면, 그 여행의 감각은 여실히 정호승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이란 흔히 떠남과 돌아옴을 운용 원리로 삼지만 정호승의 여행은 돌아옴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모종의 사라짐, 그의 여행은 떠남과 비움이라는 존재 형식에 몰두하고 있다.
“너는 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니”(「여행가방」)라고 채근하고 자문하며 여행을 통해 자신을 ‘빈 몸’으로 만든다.
그에게 여행이란 비움을 통해
가벼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달리 ‘적멸의 감각’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가 인생을 떠남과 소멸로 감각하는 것은 어떤 적멸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불교에서 적멸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 이것은 시인의 여행이 죽음의 행로를 목도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북촌에 내리는 봄눈」은 소멸과 부재에 관한 시다.
눈은 녹는다.
녹아서 사라지는 것은 눈의 가장 결정적인 운명이다.
그것이 ‘봄눈’이라고 하면 사라짐은 더욱 절실하고 긴박한 것이 된다.
봄눈의 생리란 그런 것일까.
봄눈이 내리는 북촌에는 봄이 왔으나 봄이 없고, 눈이 내려앉을 지상의 길이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이 같은 부재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인데, “봄눈을 섞어 만든 짜장면”은 이를 여실하게 환기하는 이미지다.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아버지의 마지막 하루」)에는 봄눈이 내렸으며, 아버지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어하셨으나 텅 빈 입속에 귤 한 조각의 향기를 채우고 떠나셨다.
그러니 이제 아버지를 생각하노라면 마음의 북촌에는 봄눈이 내리고, 그 눈에선 짜장면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짜장면을 배달하는 소년’이 되어 아버지의 적멸에 다녀올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못내 울지는 않을 것이다.
눈물은 정호승 시의 정의롭고 서정적인 세계를 지지하는 하나의 표지였으나 이제 그의 시는 ‘울지 않음’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다.
시인의 슬픔은 그 깊숙한 곳에 분노의 칼을 품고 있어 오히려 눈물이 많았으나 그는 지금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린 채’(「손에 대한 예의」) 울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그의 시에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의 서정이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자연성’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ㅡ문학평론가 김영희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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