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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스크랩] 시적 사유의 방황과 고역과 어려움의 깊이//이영춘의 시 세계//김백겸시인

오선민 2015. 4. 1. 18:36

시적 사유의 방황과 고역과 어려움의 깊이

                                                      시인  김 백 겸

정경교융情景交融의 풍경

 

 

 

어둠 속을 걸어가는 한 스님을 보았다 

 

달빛이 그의 발목에 감겼다 

 

산 그림자가 그의 어깨에서 출렁거렸다 

 

 

먼 산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그를 지웠다

 

 

어제 떠나온 길

오늘 떠나갈 길

내일 돌아가야 할 길

 

 

길 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없다 

 

발자국이 없다

  

텅 빈 길 위에  

 

눈이 내렸다

(시 「먼 산, 아주 오래된 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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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관념을 넣기도 어렵고 지우기도 어렵다. 시에 관념을 넣었으되 그 관념이 자취를 지워 언어의 꼬맨 자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영춘의 이 시는 유협의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시학이론을 충실히 따른 시다. 정경교융情景交融이란 예술창작에 있어 시인의 정감은 물상物象에 의지하는데 이 양자의 결합이 잘 되었을 경우를 말한다. 시인의 내적 경험과 외적실재가 융합된경우에는 경(대상)이 정(내면)이 되고 정이 경이 된다. 이러한 실례를 우리는 시 「먼 산, 아주 오래된 길」에서 본다.

이 시의 풍경은 일견 단순해 보인다. 화자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한 스님”을 본다. “달빛이 그의 발목”에 감기고 “산 그림자가 그의 어깨에서” 출렁거린다. 그냥 풍경이다. 그러나 경을 통해 숨막히도록 적막한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적막은 “먼 산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구절로 더 강화된다. 실제는 고요한 적막인데 ‘먼 산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라는 소리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더욱 고요한 적막을 만들어 낸다.

그 다음부터 시인의 관념이 들어간다. “어둠이 그를 지웠다/ 어제 떠나온 길/오늘 떠나갈 길/ 내일 돌아가야 할 길/길 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라고 시인의 해석을 풍경에 집어넣고 있다. 시 속의 행위자가 스님이니 시인은 스님이 걸어가는 풍경을 통해 적멸과 열반의 관념을 드러내고자 한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삼세三世의 업이 소멸되고 있다는 득도得道의 경지를 위와 같이 쉬운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서 마지막이 백미다. “그의 그림자가 없다/ 발자국이 없다/ 텅 빈 길 위에/눈이 내렸다”라고 심심하게 끝난다. 마치 제행諸行에 자성自性이 없다는 금강경의 무아론을 쉽고 심심하게 드러낸다. 무거운 표현으로 불법의 심오함을 드러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내용에 부합하는 화려한 표현들이 경전에 다 있으니까. 그런데 화려함을 지우고 언어에 힘을 빼서 심심하게 드러내는 시인의 의도가 백미다. 추사가「세한도歲寒圖」에서 붓가는 대로 그린 심심한 초가와 소나무처럼 힘을 뺀 경지는 오래 시를 써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 시는 ‘산길을 가는 스님’을 제제로 그린 동양화 한 폭을 연상시킨다.

불가佛家에서는 언어가 끊어진 자리를 말한다. 혹은 마음이 끊어진(지워진) 자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승려들이 바라보는 자리는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뜻도 사라진 자리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표현이기에 ‘말로는 다 드러낼 수 없고 글로도 다 써낼 수 없는’는 언어 밖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경前景의 이미지가 배경背景의 뜻을 포함한 전체의 그림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좋은 작품이 된다. 시 「먼 산, 아주 오래된 길」은 그림도 분명하고 배경의 뜻도 분명하다. 불가佛家의 초월을 말하되 뜻을 저버리지는 않고 있다.

한유韓愈의 시론

 

물방울이 뜬다 생각이 뜬다 풀잎이 뜬다 묘지가 뜬다 아버지가 뜬다 아버지 가방이 뜬다 가방 속에 넣고 다니던 아가였던 우리들이 뜬다 우리가 다시 아버지를 가방 속에 넣고 메고 다닌다 불룩한 가방, 불룩한 배, 무덤 가방이다 무덤 가방에서 아버지가 파란 새 싹으로 손을 흔든다 아버지의 손이 산을 흔든다 이름 없는 무덤 깃발, 이름 있는 무덤 가방, 아버지의 해가 둥그렇게 눈을 뜬다 둥그런 해가 둥그렇게 눈을 뜨고 일어난다 온 산이 흔들린다 불룩한 아버지의 배가 흔들린다

(시「아버지의 가방」전문)

 

 

 

독자는 “아버지의 가방”이라는 소재를 놓고 몇 개의 이미지가 시인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풍경을 본다. ‘가방’은 화자를 양육한 아버지의 그늘과 영향을 말하는 집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무덤”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해”는 “불룩한 아버지의 배”(육체의 배이자 무덤이기도 한)를 바라보는 이미지의 환몽과 투사를 시인은 드러낸다. 시인의 심상에 이 모든 이미지와 관념들이 “뜬다”라고 한 시적상태가 사실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이미지들이 떠 있는 시인의 생각을 좀 더 들여다보자. 『한유서간문書簡文』은

‘문장의 기세는 물이요, 글은 물위에 뜨는 물건이다. 물살이 드세면 뜨는 물건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따 뜬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글의 기세氣勢이니 시의 기세氣勢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시인의 정념이 만들어 내는 기세氣勢이다. 이 기세氣勢 위에서 시인의 심상이 동원한 “물방울”과 “생각”과 “묘지”와 “아버지”와 “가방”과 “아기들”이 뜬다. 이미지들이 어디에 떠 있을까. 리듬의 물결위에 떠 있다. “물방울”과 “생각”과 “묘지”와 “아버지”와 “가방”과 “아기들”의 단어는 시가 아니다. 시인이 이미지의 그물로 엮은 의미망 혹은 리듬의 물결 위에 얹은 암시의 악보에 의해 시가 된다. 시란 의사소통의 문법적 규칙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심연에서 생각이 떠오르는 데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가방」은 이영춘의 시인이 무의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의 물고기들이 유희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바다의 물고기들이 자연의 리듬에 따라 회유하듯이 이미지의 물고기들은 리듬에 흔들린다. 푸른 바다의 파도가 바람 속에 일어났다가 바람 속에 무너지듯이.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아버지의 해가 둥그렇게 눈을 뜬다 둥그런 해가 둥그렇게 눈을 뜨고 일어난다 온 산이 흔들린다 불룩한 아버지의 배가 흔들린다”라는 구절이 이해가 된다.

옥타비아 빠스는『활과 리라』에서 ‘언어는 우주처럼 부름과 응답의 세계이다. 밀물과 썰물, 합일과 분리, 들숨과 날숨의 세계이다. 어떤 단어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어떤 단어들은 서로 밀치면서, 모든 단어들은 서로 상응한다. 일상어는 별과 식물을 다스리는 것과 비슷한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집합이다.’라고 말했다. 이 시의 이미지와 단어들이 살아있는 인형처럼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은 연출가인 시인의 리듬이 드럼처럼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덕분이다.

 

 

「밤의 데몬DEM0N」과 기운생동氣運生動

 

 

다리가 긴 황새처럼 나는 늘 허기가 진다 무언가를 기다리다 지친 다리의 종족,

어둠과 어둠 사이에 끼여 몸이 작아지는 형벌의 종족, 내 다리는 언제쯤 불 밝힐

것인가 꽃이 진 상처의 자리 늘 뜨겁다 황새의 깃은 보이지 않고 꽃잎 상처로 일렁이는

이 밤의 데몬, 데몬은 밤공기를 타고 어둠을 퍼 나른다 잠든 새들은 돌아오지 않고

어둠의 어깨에 얹은 내 손가락이 기운다 기울어진 손가락 한 끝으로 새들의 혼을 불러와

이 밤 어딘가에 등 하나를 단다 그러나 온 우주의 정령이 물그림자로 업혀 오는 이슬 안개,

안개의 한 쪽 귀가 흔들린다 누가 흘리고 간 눈물일까 빗물일까 강이 길게 한숨을 토한다

*그리스어 ‘정령精靈’의 뜻으로 차용.

(시 「밤의 데몬DEM0N*」전문)

 

 

「밤의 데몬DEM0N」이니 제목이 멋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다. 이영춘 시인이 시의 주석으로 밝힌바 있지만 부연 설명한다. ‘데몬이란 일반적으로 귀신, 수호신, 악마 등을 의미하며, 본래는 초자연적ㆍ영적 존재자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다이몬(daimōn)에서 유래하는 말. 호메로스에서는 거의 <신> 또는 <신의 힘>의 동의어로서 취급되며, 모든 일을 일으키는 진정한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플라톤의 『향연』은‘소크라테스가 일평생 다이몬(Daimonion)이라는 신성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보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음성은 나를 내가 가려고 했던 것으로부터 돌리곤 한다. 그러나 결코 나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이몬은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 데몬이다. 괴테는 이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이 데몬의 존재를 중요시해 천재의 징표로 여겼다. 시인은‘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라는 낭만주의 시론은 이러한 데몬 혹은 뮤즈로 상징되는 영감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영춘시인이 드러내고자 한 “데몬”은 「밤의 데몬DEM0N*」이라는 제목처럼 밤에 투사한 시인 내면의 데몬 즉 뮤즈이다. “데몬은 밤공기를 타고 어둠을 퍼 나른다 잠든 새들은 돌아오지 않고 어둠의 어깨에 얹은 내 손가락이 기운다 기울어진 손가락 한 끝으로 새들의 혼을 불러와 이 밤 어딘가에 등 하나를 단다”는 표현을 보자.“어둠의 어깨에 얹은 내 손가락”은 시를 쓰는 순간을 암시한다. 이영춘 시인이 생각하기에 시인은“밤의 데몬”(시의 에너지)에서 새들의 혼(이미지)을 불러와 “등”(완성된 시)을 밝히는 존재이다.

“온 우주의 정령이 물그림자로 업혀 오는 이슬 안개”라는 아름다운 표현은 이영춘 시인의 낭만주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 시는 시작詩作의 비밀과 고독을 드러낸 작품인데 시인자신의 무의식에서 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말하고 있으니 일종의 시론이다.

육조시대의 미학 이론중에서 사혁謝赫의 『화품畵品』이 있다. 그「화법육론畵法六論」중 첫 째가 ‘기운생동氣運生動’이다. 화가 자신의 내면에너지가 그림에 얼마나 투사되었는가를 그림의 제일조건으로 삼았으니 서양의‘데몬demon’이론과 유사하다. 독자가 시「밤의 데몬DEM0N」을 읽고 이영춘시인의 비밀한 내면심정을 이해했기를 바란다.

「저문 강, 하늘 문」의 모티브motif

 

 

사흘 낮 사흘 밤을 공수拱手로 서 있던 싯다르타가 걸어나간

바라문의 경계가 저런 것이었을까

어둠이 내리는 강 이 쪽에서 하늘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저 강, 능라의 능선

물기둥 한 쪽이 하늘 끝 한 자락을 끌고 내려와

광목 홑이불로 펼치려는 찰나의 저 능선,

죽음의 경계로 들어가는 문이 저리 반짝일 수 있을까

세상 한 쪽에서는 한여름 밤의 아리아가 흐르고

나는 내 잃어버린 꿈 하나

아리아 속에서 *피가로의 부치지 못한 편지로 운다

바라문을 떠난 나의 싯다르타는 돌아오지 않고

황량한 그 발걸음만 바람으로 흐르는데

강은 어느 새 하늘 문을 닫은 듯

깊은 어둠으로 세상 귀를 닫는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노래’변용

(시 「저문 강, 하늘 문 」전문)

 

 

 

“저문 강”에서 시가 시작하고 있으니 강의 암시와 상징을 공부해야 이 시가 감상이 된다. 강은 통상 시간을 은유하고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가 저승(하데스)를 가기위해서는 아케론(비통), 코키토스(시름),플레게톤(불길), 망각(레테), 스틱스(증오)의 강을 건너가야 한다. 이 중 문학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강이 레테Lethe이다. 망자는 이승의 기억을 모두 지워야만 저승에 갈 수 있다.

이영춘 시인의 이 시는 시간의 강에 몰락하는 시와 예술과 사랑의 운명을 비장미로 드러내고 있다. 비장悲壯이란 소멸하는 인간의 삶이 위대하다는 뜻이고 아름답다는 얘기니 그리스 비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인간(사물)의 운명은 신들의 계획에 갇혀 오딧세이처럼 방랑과 좌절과 마지막 귀환을 거친다. 그리스의 많은 시가詩歌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신들의 위치에 있는 영웅을 바라보지만 결코 이르지 못하는 숙명의 플롯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그리스 비극은 비장미悲壯美의 아름다움이다.

이영춘 시인의 「저문 강, 하늘 문」도 같은 모티브motif를 공유하고 있다. “저문 강”의 비유로 망각과 죽음을 “하늘 문”의 비유로 천국과 피안을 말하고 있다.“바라문을 떠난 나의 싯다르타는 돌아오지 않고/ 황량한 그 발걸음만 바람으로 흐르는데”의 구절은 결국 인간의 한계에 갇힌 시인의 자아룰 말한다. 그러나 시간에 몰락하는 시인의 예술과 사랑은(“피가로의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시의 표현으로 승화되고 아름다움을 얻는다. 마지막 연“강은 어느 새 하늘 문을 닫은 듯/ 깊은 어둠으로 세상 귀를 닫는다”의 적멸의 아름다움처럼.

이 시는 박제삼의 「울음이 타는 강」과 정서를 같이하지만 “하늘 문”과 ‘싯타르타“의 구도를 넣고“피가로의 부치지 못한 편지”넣어 사랑과 예술의 운명을 말한 점이 다르다. 정서일변도의 시와 관념을 배경으로 깔은 시는 그 차이만큼이나 독자의 취향을 결정한다.

『노자의 무덤을 가다』

이영춘 시인은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하는 시인이다. 올해 서정시학에서 발간한 『노자의 무덤을 가다』라는 시집도 사유를 넣고자 의도한 시편들이 많이 보인다. 해설을 쓴 이승하 시인의 말을 빌려온다.

노자를 통해 시인이 배운 것은 아마도 ‘욕망의 끝’일 것이다. 더 많이 가졌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사는 인간에게 시인은 무위자연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도가사상에 대해 말한 것은 이 시편 정도에만 국한되고 많은 시가 싯다르타의 사상을, 즉 불교정신을 말하고 있다.

이영춘 시인은 개인사와 가족사의 아픔에 함몰되지 않고 그것을 이웃과 동시대인의 고통, 우리 사회와 역사의 질곡까지도 보듬으면서 그것의 치유와 문학적 승화를 위해 노력을 해온, 하고 있는, 해나갈 시인이라는 것이다. 형제 많은 집안의 맏딸 같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시인- 바로 이영춘 시인일 것이다.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를 해석하는 것은 시인이나 평론가의 전문적인 식견으로 시인의 시적비밀을 분석하거나 해체하여 그 구조를 드러내보는 일이다. 그러나 이승하 시인의 해설로도 내 졸문으로도 시의 비밀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이 대상과 언어의 긴장사이에 불어넣는 미묘한 갈등이나 불안 혹은 정열은 해설로 드러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최선의 시 해석은 결국 시의 원본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영춘 시인의 시에 대한 행보가 어디에 이를지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흥미롭다. 시적 사유의 고역과 방황과 어려움의 깊이를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이 독자가 이영춘 시인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게 하는 도돌이표 역할을 했기를 바란다.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시집으로『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山하나』,『북소리』,『비밀방』,『비밀정원』『기호의 고고학』

.시론집으로 『시적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

.주소: 305-353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 1045 한국원자력연구원

.전화: 010-7408-2377

.이메일 finance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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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영춘 시 창작 교실
글쓴이 : 너의 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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