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새 (외 1편)/ 박시하 본문
새 (외 1편)
박시하
슬픈 구멍들
흰 절벽
빛나지 않는 별
새벽 배
죽음의 혀
날지 못하는 말이
검은 물속에 떠 있다
이뤄지지 않는 악몽처럼
가라앉은 배의 썩은 기둥처럼
우리는 조금씩 물질이 되어
한쪽 날개가 녹는다
묘비들
깊고 둥근 침묵 아래
영혼만으로 울 수 있던 한때였다
종종 다른 영혼과 어깨동무를 했다
별이 노을을 비추는 것처럼
우린 당연하고 미약했다
벤치에 앉아 잠들거나
나비를 따라 날고
꽃의 심장에 들락거렸다
죽어서도 살았지만
서로를 기억하지는 않았다
묘지의 길은 묘지의 길로만 났으므로
삶의 악취를 표백하며
죽은 자의 이름으로
산 자의 이름을 대신 썼다
엔딩 없는 흑백영화를 관람하는
다정한 우리가 늘어선
탈색된 사진을 한 장씩 받았다
느린 비와 함께
전주곡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한때였다
—《시인동네》201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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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 1972년 서울 출생. 2008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눈사람의 사회』.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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