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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저 강, 붓다의 침묵//이영춘

오선민 2015. 9. 1. 16:55

 

저 강, 붓다의 침묵 (외1편)

                             이 영 춘



저 강물 속에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돌기 하나

누구의 영혼 한 조각 이슬방울로 떠도는 편재遍在인가

편재의 그 넋으로 침묵에 이르는 지상의 주재자 그대,

강물 일렁이는 저문 강 창가에 등 기대고 서서 나는

내, 가는 길을 그대에게 묻는다 

  

장원의 숲속에서 한 때 방탕하였던 그대 업보의 흔적,

그 천형의 흔적, 붉은 화인 등줄기에 꾹꾹 찍으며

그대는 도의 길, 무위자연의 공으로 이르는가


얼마쯤 더 가야 그대의 가슴 저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까

보리수 고행의 열매, 브하가비띠*의 적멸로 뚝뚝 흐르는데

나는 이 쪽 강 하구에서

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붉은 죄수의 쇠사슬 목에 걸고

절름절름 세상 길을 가고 있다


붓다여! 그대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침묵의 돌기 하나

동방의 강 하류 어느 억겁의 중간쯤에서

그대 돌아갈 무위자연의 긴 강, 그 푸른 심장에

나는 매일 밤 그대 등 뒤에 서서 촛불 한 자루씩 불사르며

슈냐*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브라가비띠=산스크리트어‘성스러움’의 뜻 *슈냐(sunya)=불교경전에서 ‘空’의 뜻




흰 고무신 두 짝

                          이 영 춘



맏동서 상여 나가던 날

상여 뒤를 따라 떠나던 혼백함 작은 가마

가마 속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 두 짝

상여꾼 한 사람은 앞에서 받들고

또 한 사람은 뒤에서 받들고


관이 묻히자 고무신 두 짝도 보공처럼 묻혔는데

이승에서의 발걸음도 무겁고 버거워 절룩거렸는데

저 신발 두 짝 왜 무덤까지 따라갈까

궁금하기만 했는데


그 동서 지금쯤 그 신발 신고 꽃동산 넘나들까

아니면 시냇물 어느 너럭바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 승천하셨을까


너무 멀고 먼 궁전에 드셔

자못 궁금한 흰 고무신 두 짝


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슴아슴 아지랑이로 피어 올라

가마 속에 든 그 혼백,

내 눈 안에서 흰 나비로 팔랑거린다


                           2011년<시안>가을호

출처 : 이영춘 시 창작 교실
글쓴이 : 너의 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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