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저 강, 붓다의 침묵//이영춘 본문
저 강, 붓다의 침묵 (외1편)
이 영 춘
저 강물 속에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돌기 하나
누구의 영혼 한 조각 이슬방울로 떠도는 편재遍在인가
편재의 그 넋으로 침묵에 이르는 지상의 주재자 그대,
강물 일렁이는 저문 강 창가에 등 기대고 서서 나는
내, 가는 길을 그대에게 묻는다
장원의 숲속에서 한 때 방탕하였던 그대 업보의 흔적,
그 천형의 흔적, 붉은 화인 등줄기에 꾹꾹 찍으며
그대는 도의 길, 무위자연의 공空으로 이르는가
얼마쯤 더 가야 그대의 가슴 저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까
보리수 고행의 열매, 브하가비띠*의 적멸로 뚝뚝 흐르는데
나는 이 쪽 강 하구에서
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붉은 죄수의 쇠사슬 목에 걸고
절름절름 세상 길을 가고 있다
붓다여! 그대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침묵의 돌기 하나
동방의 강 하류 어느 억겁의 중간쯤에서
그대 돌아갈 무위자연의 긴 강, 그 푸른 심장에
나는 매일 밤 그대 등 뒤에 서서 촛불 한 자루씩 불사르며
슈냐*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브라가비띠=산스크리트어‘성스러움’의 뜻 *슈냐(sunya)=불교경전에서 ‘空’의 뜻
흰 고무신 두 짝
이 영 춘
맏동서 상여 나가던 날
상여 뒤를 따라 떠나던 혼백함 작은 가마
가마 속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 두 짝
상여꾼 한 사람은 앞에서 받들고
또 한 사람은 뒤에서 받들고
관이 묻히자 고무신 두 짝도 보공처럼 묻혔는데
이승에서의 발걸음도 무겁고 버거워 절룩거렸는데
저 신발 두 짝 왜 무덤까지 따라갈까
궁금하기만 했는데
그 동서 지금쯤 그 신발 신고 꽃동산 넘나들까
아니면 시냇물 어느 너럭바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 승천하셨을까
너무 멀고 먼 궁전에 드셔
자못 궁금한 흰 고무신 두 짝
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슴아슴 아지랑이로 피어 올라
가마 속에 든 그 혼백,
내 눈 안에서 흰 나비로 팔랑거린다
2011년<시안>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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