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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하지 / 문정영

오선민 2015. 9. 3. 16:03

하지

 

  문정영

 

 

 

내가 붉은 화장을 하기 전에 잎들은 오목렌즈를 꺼내었다

 

이제 새들은 입을 다물어야 할 때

그리고 나무들은 도수가 높은 안경을 맞추어야 할 때

 

드디어 햇살에 눈이 마주치고 내가 순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는 것들은 너무 가까워 붉기가 덜하고

 

멀리 있는 것들은 초점이 멀어 덜 붉었다

 

공원에서 여름 나무들이 돋보기를 쓰고 있을 때

새들이 지난계절 혼자 울던 일을 반성할 때

 

너를 놓고 나니 다른 네가 더듬거리며 다가왔다

더듬거리면서 닿은 것들의 얼굴이 붉은색이었다

 

 

                       —《시인동네》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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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 /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낯선 금요일』『잉크』『그만큼』. 현재 계간 《시산맥》발행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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