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 김승희 본문

시 비평

[스크랩] 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 김승희

오선민 2015. 9. 10. 14:23

 

 

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 김승희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온통 벌거숭이로 피를 칠하고 있을 때

난 알 것 같았어,

왜 별이 아름다운지를,

난 알아질 것 같았어,

만일 구름의 너울이 없다면

어떻게 감히 태양을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를,

 

밤에 마지막 외침처럼 황량한 마음으로

지붕 위에 서 있으면

먼데 있는 사람아, 말하려므나

내가 평화처럼 혹은 구원처럼

금빛이더라고,

신비한 금선이 아득히 흘러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꿈꾸게 되는지를,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울부짖는 하나의 욕설처럼 추악해질 때

난 알고 말았어,

별과 神은 왜 그토록 멀리 있어야 하는지를,

모든 성당의 창문에는

왜 천연색의 색유리가 끼여 있는지를,

 

오늘 내가 여기 천벌의 화형으로

지새우는 불이

어디엔가 먼 사람에겐 -

아마도 위안처럼 정다우리니

생각해 보아,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별은,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왜 우리에겐 그토록 간격의 탐닉이

필요한 것인가를


-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민음사, 2002)

........................................................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사람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도 사람입니다. 내게 가장 기쁜 일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도 사람이고 난해한 것도 사람입니다. 가장 슬픈 일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오랫동안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듯 삶에는 사람 문제가 가장 어렵고 힘들고 복잡합니다.

 

 따라서 행복의 알짬은 사람이고 사람과의 시간과 관계입니다.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왜 별이 아름다운지를’ 저절로 알아가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깨달을 수 있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일이라 도중에 자주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름의 너울이 없다면 어떻게 감히 태양을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를’ 다시 새겨봅니다. 성당의 스테인드그라스를 투과한 아름다운 빛이 젖은 영혼을 감싸안을 때는 어떤 말씀도 필요치 않습니다. ‘별과 神은 왜 그토록 멀리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듯이 늘 가까이 있지만 묵묵히 아름다운, ‘간격의 탐닉’이 무한히 베어들기를 희망합니다. ‘위안처럼 정다운’ 경배의 하느님처럼 자잘한 소음으로부터는 좀 비켜 있어야겠습니다.

 

 한 노랫말처럼 '밤이 깊을수록 말 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 채 느긋하게 정 들어 가는 지' 알게 되길 소망하지만 반드시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든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에게 ‘신비한 금선이 아득히 흘러’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꿈꾸게 되는지를’ 알아가면서 언제까지나 사람으로 행복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