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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외 2편)/ 최세라

오선민 2015. 9. 23. 17:56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외 2편)

 

     최세라

 

 

 

   심장이 바닥을 친다

   눅눅한 장판 아래로 피 흐르다 벽을 타고 올라와

   꽃무늬 그린다 길고 짧은 꽃대들이 스위치를

   껐다 켠다 인중이 깨어진 꽃들

   이진법의 신호를 타전한다

 

   하나 아니면 전무

   지독한 이분법의 공식으로 당신은

   자목련빛 눈을 뜬다

   죽음이

 

   택배로 온다 밤새도록 타전되는 당신에 대한 풍문으로 정강이를 무릎을 어깨를 삼킨다 검은 관이 열리는 나무 밑에서 아찔한 눈빛을 삼킨다 이제 까마득해지는 얼굴을 삼켜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새의 표절이고 절묘한 부분만 베낀 모방이고

 

   당신으로부터 당신까지 이어지는 유서 깊은 역사와

   관이 열린 틈 압핀처럼 쏟아지는 소나기까지

   언 꽃을 벽에 치듯 떠나보내야 한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눕는다

   바닥 가득 일렁이는 당신을 본다

 

 

 

  복화술사의 거리

 

 

 

   구멍에 검지를 끼우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파인 데에 검지를 댄다

   수두 자국에

   못이 박혀 있던 마루에 벽에

   딱지가 앉을 만하면 후비던 가슴팍에

   자정의 비늘에 덮여 가려워 죽겠는 귓구멍에

   먹먹한 저녁에 찾아오는 옛사랑 희미한 동공에

   개미만큼 조용하게 뚜껑을 열고 기다리는

   함정처럼 그러나

 

   아주 작은 맨홀 구멍에

 

   그 속에 들끓는 쥐들과 그것들의 남루한 위궤양에

   암 덩어리를 떼어낸 자리에

 

   그것들이 다시 주렁주렁 매달린 감자를 뜯어내고

   생으로 뽑힌 머리카락 들어 있던 모공 주머니에

   가난이 떼버렸던 태아 심장 있던 자리에

   떨리는 입술에 다시 절규하는 목구멍에

   송곳니 빠진 구멍에 잇몸이 녹아내린 붉은 자리에

   한입 뜯긴 사과의 녹물 고인 환부에

 

   파인 데마다 검지를 댄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외투 속에서 낡아가고

 

   미래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이 토스트를 사 먹는 거리

   쇳조각 조각으로 진눈깨비 내린다

 

   등을 기대면 휘청거리던 모퉁이 그 숨죽이던 허방에

   허방이 매순간 짚던 헛다리에

 

   손가락 인형들이 말을 건다

   아홉 손가락에 실린 쉰 개의 방언으로

   녹슬어 부서져가는 혈관 위에서 해전 춤춘다

 

 

 

  돌의 입술

 

 

 

   돌 하나를 집어들 때 조약돌을 들지 않고 자갈이나 정원석을 들지 않고 수석을 들지도 않고 지층 하나 통째로 드는 것, 당신은 오래 골똘하다. 팽팽하던 시간들이 진공관에 담겨 노출과 압축을 반복하면

 

   돌 속의 장미 돌 속의 눈동자

   돌 속의 나비

   돌 속의 지느러미

 

   몸 전체가 마지막 물방울을 삼킬 때 돌이 완성되는 거라면 완성되지 못한 돌에 금 갈 때 우린 무엇이 되어 흐르는가 오랜 지느러미인 나를 저어서 당신은 절벽까지 다가갔고 절벽 너머로 솟구치지 못한 것들이 비늘만한 화석으로 남았다

 

   그곳은 견딜 만한지,

   간신히 입을 열어 나는 물었지만

   당신의 손을 떠나 전신으로 물수제비뜨며 날아갈 때

   물은 물 전체로 마지막 돌을 삼켰다

 

 

 

                         —시집『복화술사의 거리』(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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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라 / 서울 출생.  2011년 《시와 반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복화술사의 거리』.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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