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음악이 있는 시)슈나우저를 읽다/김은호 본문
슈나우저 강아지 '토토'와 고양이 '나비'가 함께 찍은 사진.
IMF와 함께 우리 집에 온 '토토'는 2010년 12월 19일 새벽에 죽었다.
슈나우저를 읽다/김은호
텃밭 가장자리를 곡괭이로 파서 열고 흰 무명천에 책을 싸서 묻는다 삽으로 흙을 뿌려 덮으며 흰머리멧새 울음소리도 몇 송이 얹혀준다 오랫동안 읽었던 부드럽고 따듯한 이야기들이 땅속으로 스며든다 사방팔방 무너져 내려 집에 쌀 팔 돈조차 없던 때 길에서 주워온 슈나우저* 한 권 검고 부드러운 털로 덮인 표지에 반짝반짝 두 개의 별이 박힌 책 첫 장부터 끝까지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풍성한 수염 출렁거리던 가끔 붉은 혀로 세상을 핥아주거나 컹컹 꾸짖을 줄도 아는 슈나우저는 따뜻한 난로가 부록으로 묶인 책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유쾌한 문장들 쏟아지고 우리 집 웃음소리 굴뚝처럼 높아갔다 책과 독자 사이를 오가던 수많은 사연 잿빛으로 물든 날 ‘우리 함께 고통을 이겨냈어요’ 이별의 장을 앞발로 버티며 너덜너덜 노래하던 책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셨다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부터 온 통증이 죽음까지 내달았다 열심히 나를 뒤적거렸지만 슈나우저 한 권 찾아내지 못했다 일상의 책장에 꽂혀 멀뚱멀뚱,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하던 나는 슈나우저만도 못한 파본破本이었다 *슈나우저(schnauzer) : 독일 원산 반려견의 한 품종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 외
출처 : 시와소금
글쓴이 : 시인과 농부 원글보기
메모 :
'좋은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외 2편)/ 최세라 (0) | 2015.09.23 |
---|---|
[스크랩] 발 (외 2편)/ 권기만 (0) | 2015.09.23 |
[스크랩] (음악이 있는 시)잣나무숲 목욕탕/김은호 (0) | 2015.09.10 |
[스크랩] 복면을 쓰고 / 김이듬 (0) | 2015.09.03 |
[스크랩] 하지 / 문정영 (0) | 2015.09.03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