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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벚꽃/ 이윤학

오선민 2016. 4. 14. 15:38

 

 

 

벚꽃/ 이윤학

 

벚꽃 피기 전에

저 많은 분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저 분들 중에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벚꽃이 피기 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몰려오기만을

누가 기다리기나 했을까

 

그래도 올 때는 좀 나았겠지요

이쯤 되면 짜증만 앞서겠지요

앞이나 끝이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서 주저앉아

살 분은 없을 겁니다

 

-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학과지성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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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휴일 전국 벚꽃명소는 흰빛과 분홍빛으로 물든 벚꽃을 보기 위해 인파로 넘실거렸다. 평일인 오늘도 여의도 벚꽃축제를 찾아 사진 찍는 많은 시민들로 윤중로가 오후 내내 북적였다고 한다. 마치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솜사탕, 팝콘, 닭꼬치, 번데기, 핫도그, 호떡, 오징어 파는 사람 그리고 엿장수, 사진사, 초상화가는 생계가 걸린 문제라 그렇다 치고 과연 그 모든 사람들이 이 꽃놀이를 위해 겨울을 견뎠단 말인가. 그래서 빵빵거리는 차량들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면서도 기어이 비집고 그곳에 당도한 것일까.

 

 하지만 그 북새통 속에서 제대로 벚꽃구경이나 할 수 있으려나. 그래봤자 사람구경이겠지만, 사람들은 ‘짜증’이 살짝 나다가도 찌들고 팍팍한 삶에 서로 얼굴 쳐다보며 그렇게나마 잠시 입가에 웃음을 짓는 것이다. 특히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벚꽃 길은 꽃비를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꼬옥 잡고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평생 행복하게 해로한다 하니 억지로라도 잡은 손 흔들며 서로 예쁜 척 사랑스러운 척 할 것이다. 정읍의 내장사 길, 부안 내소사 벚꽃 터널, 해운대 달맞이길, 경주보문단지, 경기도청 등등,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 그렇지 어느 벚꽃길인들 그같은 기분이 아니랴.

 

 그럴 땐 ‘앞이나 끝이나 보이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어떤 장소와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빼어난 경치 탓도 있겠지만 대개는 못 잊을 사람과의 추억 때문이리라. 결국 사람과 장소는 서로 맞물려서 그것을 환기하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더럽고 치사한 그리움일수도 있고, 사람을 도통 놔주지 않는 지긋지긋하고 몹쓸 그리움일 수도 있겠다. 오늘 동촌유원지 길을 부러 지나면서 환한 아름다움에 내 그리움의 탁한 속내도 다 드러나고 말았다. 까짓 거 탈탈 비우고 털어내고 싶었건만 심사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이 같은 딴 세상에서 ‘주저앉아 살 분’이 과연 있을까. 오늘처럼 궂은비라도 한바탕 휘몰아치면 그 연약한 것이 한꺼번에 꽃비가 되고 폭설로 날리고 말 것을. 범람하는 영혼의 향기도 폭삭 주저앉아버릴 것이니. 그러고 보면 한꺼번에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 못가서 와락 떨어지는 벚꽃의 조루성은 왠지 군자답지 못하고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정치판의 우르르 한쪽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호남 뿐일까마는 현역 정치인의 70% 이상은 물갈이해야 한다고 그러고선, 아무리 문재인이 마땅찮고 김종인이 허접하기로서니 분열의 주역들이며 다 시든 구닥다리까지 몽땅 살려놓으려는 기세는 또 무언가.

 

 무엇을 바꾸어야하고 심판해야 하는지 다 드러난 마당에. 술에 취하고 일제히 발기한 억조창생의 꽃잎에 취하고 내 시름에 기름을 부은 이 천지간의 화딱지들로 온 몸이 알딸딸하다. 그래서 눈물겹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 지리멸렬함과 비루함에 그냥 눈물이 흐른다. 벚꽃은 피기 전의 잠깐 동안만 희망이고 환희지, 일단 꽃이 폈다 하면 줄행랑이 아니던가. 지금 이 빗줄기에 내일 남아 있을 꽃잎이 몇 점이나 되려나.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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