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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적(敵) / 마광수

오선민 2016. 4. 14. 15:41



적(敵) / 마광수

 

해방전에 살았던 윤동주는 참 행복했겠어

그때는 적이 분명했을 테니까.

일제(日帝)가 곧 적이고 적이 쓰러지면

곧장 희망이 달성되는 걸로 돼 있었으니까.

유신 시절에 살았던 청년들도 참 행복했겠어

그때도 적은 하나요, 적이 분명했을 테니까.

'군사독재'가 곧 적이고 그건 너무 간단한 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적이 너무 많아 어지러워

아니 도대체 뭐가 적이고 뭐가 아군인지도 모르겠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도 되니까.

적이 간단하다면, 그래서 그놈을 죽여 버리면

모든 게 다 잘되는 그런 적이 있다면

참 행복할거야 나는.

 

 

- 시집『사랑의 슬픔』(해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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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품격 있는 나라에서 자긍심을 갖고 맘 편히 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는 정치 말고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정치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정치가 내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화가 진척될수록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성숙한 정치문화가 자리 잡아야 마땅하건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치발전은커녕 후진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문화가 판을 치고, 갈수록 후안무치한 작태들이 만연해가고 있다.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 밭을 가는 농부에 비견될 수 있는데, 여야 막론 그들의 분탕질로 밭은 완전 뒤집어져 아예 농사를 망칠 위기에 놓였다.

 

 이는 살쾡이나 멧돼지의 습격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급기야는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조차 가리기 어려운 적들의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독선과 아집과 탐욕으로 국민들의 마음은 다 무너져 내렸다. ‘일제가 곧 적이고’ ‘군사독재가 곧 적이던’ 시절이 차라리 다행이고 ‘행복했겠’다는 심정 그대로다. 장차 이 농사를 어찌 지어갈지 암담하기만 하다. 멀쩡하던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간지 두 달이 넘었다. 깨어나지 않는 어머니의 눈꺼풀보다 더욱 절망적이다. 병실에 가만 누워있는 동안 그들은 실컷 칼춤을 추고서는 이제 와서 부작용을 최소화한답시고 멈칫 한 사람 앞에선 “스스로 떠나라”고 하질 않나, 여러 차례 말을 바꾸더니 결국 몰염치한 셀프공천을 감행하고서 “뭐가 잘못이냐”며 배를 내밀지 않나.

 

 ‘지금은 적이 너무 많아 어지러워’ ‘아니 도대체 뭐가 적이고 뭐가 아군인지도 모르겠’다. 피아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체성이 없다. 군대는 복장이나 마크 또는 깃발 등을 통해서 피아를 식별한다. 또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야간에는 암구호를 사용하여 피아를 변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나라 정치판에서는 안개만이 자욱해 저들조차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가리지 못할 정도로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나는 유승민의 지역구 주민이면서 그를 지지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지만, 진정한 보수를 꿈꾼다면 진영 의원을 포함해 그런 사람들이 그 당에 남아있어야 하고 그들의 고언이 존중받아야 온당하다. 여당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져도 덜 억울하다.

 

 어림잡아 여당 공천자의 절반은 아예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될 위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비율은 여당에 비해 조금 낮아질지 모르겠으나 야당 역시 '국민의 당' 포함 마땅치 않은 인물이 수두룩하고 특히 비례대표 후보를 보면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금껏 기득권과 권세를 누려왔고 지향하는 자들로, 심지어 적진에 포진했던 자들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사실 피아구분이 어려운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더민주당의 경우 정체성은 오간데 없이 마크를 떼버리고 깃발마저 내려진 채 불쑥 나타난 용병대장에 의해 마구 총질을 해댄 것 말고 무얼 했나. 보자보자 했더니 이제 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제 손으로 제 어깨에 별 다섯 개를 달고 八자 턱을 쭉 내민다? 에라이, 아침 밥맛이 뚝 떨어졌다.


권순진


 

Interlude - Scott D. Davis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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