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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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2016 시인들이 뽑은 좋은 시(빈 산. 3 )//이영춘

오선민 2016. 4. 22. 20:23

빈 산. 3

                 이 영 춘


큰 산에 이르러


노송 한 그루 볼 수 없어


눈 감고 앉아 노송을 본다


먼 산등성에 누워 있던 와불 한 존尊


눈 뜨고 일어나


성큼 성큼 산문을 연다


열린 산 문 사이로


황금 구름을 타고 가는 소 한 필


곡기 끊고 누운 와불에 업혀


심우도로 가는 돌문을 연다


나는 돌문 밖에 서서 젖은 갈잎으로 운다


                                (2015.시와표현 가을호)  이영춘제14시집<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시평)

인도는 흔히 붓다의 나라라고 알고 있어서 여행객들은 붓다의 탄행지는 물론 성도지 입멸지등을 빼놓지 않고 둘러보곤 한다. 그러나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다. 12억 인구의 83%가 힌두교도이고 불교도는 1%도 되지 않기 대문이다.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붓다가 인간 존재의 근원을 깨닫고 엄격한 카스트제도 하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인간평등의 길을 제시하고 노예계급인 우파리존자를 10대 제자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몸소 실천하기까지 하였으나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엄연히 유지되고 있다.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리는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이 시인은 여정의 단상들을 일기처럼 쓰고 그것을 모아 서너 행의 산문시 30편을 시집의 제1부에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시를 유서 쓰듯 혈서 쓰듯"(서문=시인의 말) 엄격하게 시를 쓰는 시인은

"이 글도 시가 될 수 있는가?

온 천지에  신과 시가 있어도 나는 없고

폴 발레리의 자연 형상을 그 이상으로 그려내지 못하면 시가 아니라고,

시 아닌 시를 쓰고 있는 나는 보르헤스의 "모래의 집인가?" (시: 눈眼10)전문.*모래의 책>변용

시인은 "눈眼10"에서 반문을 거듭하면서도 신들의 발자국을 따르는 여정을 계속한다.


2부에서는 삶의 터전인 "춘천"을,3부는 일상행활 속에서 수시로 스쳐가는 "사유들"을, 4부는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서는 空,美,仁,眞 등 경계가 없는 철학적 사유들을 그리고 5부 "파문'에서는 그 모든 현장에서 어렵게 그러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엮어 14번째 시집을 상재하였다.


서두에 제시한 시, "빈산.3"은 4부의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로 분류되는 시로 시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사유의 한 단편이라고 볼 수 있다.


"노송 한 그루 볼 수 없"는  '큰 산"은 우리가 자주 등산하는 그런 산이 아닐 것이다. 시인이 마음 먹고 큰 산을 찾는 이유는 "노송"을 보고 싶다는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묵묵히 비바람을 견뎌내며 이리구불 저리구불하지만 절대로 균형을 잃지 않고 시간을 버티며 성성한 노송, 그것은 시인이 기다리는 정신적 스승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인 자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눈을 감고도 그 노송을 볼 수가 있다.


그 노송은 바로 "먼 산등성이에 누워  있던 와불"이었고 그 와불의 등에 업힌 것은 "황금 구름을 타고 가는 소  한 필"이었다. 드디어 시인이 "심우도로 가는 돌문을 연다".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행, 시인이 말하고자 한 이 시의 참 뜻은 "나는 돌문 밖에 서서 물기 젖은 갈잎으로 운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1권의 시선집을 포함, 14권의 시집을 꾸준히 상재하면서 "유서 쓰듯, 혈서 쓰듯" 시를 써 온 시인, 이영춘 시인의 깊고 넓고 예리한 사유는 자기완성의 기원을 넘어 인간 존제의 근원에 이르고자 하는, 즉 심우도의 "소'를 찾고자 하는 염원으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머지 않아 "황금 구름을 타고 가는 소"가 되어 돌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나.

시인의 神은 바로 시가 아닌가!?

                                               권현수 시인 (     )




출처 : 이영춘 시 창작 교실
글쓴이 : 너의 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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