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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외 2편/ 김충규

오선민 2010. 6. 9. 00:26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외 2편

 

 

             김충규

 

 

어두운 낯빛으로 바라보면 물의 빛도 어두워 보였다

물고기들이  연신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는 것은

어둠에 물들기를 거부하는 몸짓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취하지 않는 물고기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몰골은 어떻게 보일까

무작정 소나기 떼가 왔다

온몸이 부드러운 볼펜심 같은 소나기가

물위에 써대는 문장을 물고기들이 읽고 있었다

이해한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그들의 교감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것인가

살면서 얻은 작은 고통들을 과장하는 동안

내 내부의 강은 점점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풍성하던 魚族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후로 내 문장엔 물기가 사라졌다

물을 찾아 온다고 물기가 절로 오르는것은 아니겠지만

물이 잔뜩 오른 나무들이 그 물기를 싱싱한 잎으로

표현하며 물 위에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나를 부끄럽게 했다

물을 찾아와 내 몸이 조금이나마 순해지면

내 문장에도 차츰 물기가 오르지 않을까

차츰 환해지지 않을까

 

내 몸의 군데 군데 비늘 떨어져 나간자리

욱신거렸다

이 몸으로는 저 물속에 들어가 헤엄칠 수 없다

 

 

 

바닥  

 

  

   갓 태어나 바닥에서 자란 사람, 갓 죽을 때 바닥에 눕는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어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하여 바닥으로 끝나는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난 힘으로 걸었고 뛰었고 지치면 쉬었고 하고 싶으면 바닥에서 정사를 나눴고 병들면 바닥에 누웠다 지하역의 노숙자도 청화대의 대통령도 바닥에 눕고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  제 아무리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도 추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은 추락의 마지막 지점, 바닥을 피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도 그곳에도 바닥이 있다 죽어 무덤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도 바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등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닥의 힘에 순응하는 것,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준 힘으로 오늘 내가 호흡을 이어간다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주지 않으면 영영 바닥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호흡 정지, 죽음이다 생과 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건 바로 바닥이다 바닥이 神이다

 

 

 

저수지 

 

 

바닥 전체가 상처가 아니었다면 저수지는

저렇게 물을 흐리게 하여 스스로를 감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수지 앞에 서면 내 속의

저수지의 밑바닥이 욱신거린다

저수지를 향해 절대로 돌멩이를 던지지 않는다

돌멩이가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내 속의 저수지가 파르르 전율하는 것이다

잔잔한 물결은 잠들어 있는 공포인 것이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

 

저수지를 떠날 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상처 가진 것에 대해 연민 혹은 동정을 가지면

몸을 던지고 싶은 법,

그런다고 내 속의 저수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 김충규 :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때> <물위에 찍힌 발자국> <아무 망설임 없이>등이 있음. 계간<시인시각> 발행인. <문학의 전당> 대표. 제1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오월문학상, 제1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글쓴이 : 박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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