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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일탈의 순간

오선민 2010. 12. 18. 15:00

일탈의 순간

 

                              김길나

 

 

 

보았다. 율포 바다에서 바다 밖으로

날렵하게 몸을 내민 팔뚝만한 숭어를

보았다. 바다의 수막을 뚫고 치솟아 오른

빛 부신 높이, 그 힘찬 도약을

 

바다에서 허공으로 월담하는 묘기,

그 벌거벗은 도발의 춤이 싱싱하다

싱싱할수록 생生의 마당, 그 바깥으로의

저 무모한 노출은 위태롭다

 

한바탕 비릿한 어시장을 휘돌아 나온

돌개바람이 여기 득양만에 와서 휘파람을

분다. 풋풋하게 휘파람을 박차고

수평의 일상을 뒤집은 그것

생의 한계를 뚫고 수직묘술을 연출한 그것

죽음의 세계를 일순 낚아챈 그것

 

또 그것은 내 망막에 포획된,

일탈의 높이로 생생하게 떠 있는 반짝이는 실체!

도약의 꼭짓점에서 절묘하게 뜬 채로 멈춘,

시간이 멈칫 멈추고

내 호흡이 순간 멈춘

 

그러므로 펄펄 살아 날 것으로 펄떡이는

언어의 도발이다. 그것은

밑 모를 무의식 심층에서 불끈 솟아나

표층을 뚫고 불쑥 튀어 나온

언어의 벼락이다. 그것은

 

  

 

                               —《문학청춘》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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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나 / 1940년 전남 순천 출생. 1995년 시집 『새벽날개』로 등단. 시집 『빠지지 않는 반지』『둥근 밀떡에서 뜨는 해』『홀소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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