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명태 / 강우식 본문
명태
강우식
눈이 내린다.
에라 모르겠다. 하던 일도 작파하고
가스 불빛처럼 새파랗게 타오르며
숨이 넘어가도록
사랑을 했다.
계집은 파도가 칠수록
해발 6백 미터의 진부령 산마루를
굽이굽이 넘고
나는 토마토 빛의 계집을 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으, 클라이막스
기총소사처럼 막 쏘아대는
눈송이들의 난사.
급속냉동실에 든 듯
내 사랑도
그냥 고대로 얼었으면 하는
불륜의 끝 같은 순간이여.
가스 불처럼 시퍼렇게 타올라라,
휘몰아쳐라, 미쳐버려라.
얼어라, 얼어.
그것마저도 은빛 적막으로 덮어버려라.
벌거숭이 알몸에 눈이 닿는
영하 20도의 용대리 덕장에는
사연 많은 우리들처럼
명태가 얼고 있었다.
북태평양 푸른 바다에서
남남끼리 살다 잡혀
짚 한 오리의 인연으로
부부처럼 묶여서
한겨울 내내 어져녹져
몸 비비며 황태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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