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타나토스를 관통하는 뜨겁고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 / 정수경 본문

시 비평

[스크랩] 타나토스를 관통하는 뜨겁고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 / 정수경

오선민 2011. 1. 4. 23:44

《도서정보》

 

입술 (강인한 시집) 시학,  2009. 7.7

  

✱ 시인의 말 

   독자들이여, 이 시집에서 시인을 읽지 말고 제발 시를 읽으십시오. 이 시집 속의 시를 읽으면서 청년을 느낀다면 그게 시인이고, 어떤 시를 읽으면서 중년이나 노인을 느낀다면 그 또한 시인일 것입니다. 가능하면 나는 처음 시단에 나서는 열렬한 청년의 자세로 시를 썼습니다. 이 시집에서 나는 청년으로 살고 사랑하였으므로 부디 그 청년을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 이것이 진정한 내 삶의 얼룩이며 삶의 무늬입니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 40년 넘게 시를 쓰며 오래 궁구(窮究)한 끝에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노래하는 대상은 다르고, 뒤죽박죽의 세계에 간섭하면서도 내 시가 지탱하는 중심축은 바로 이것입니다.

                               2009년 봄, 강인한

 

 《목차》

  

시인의 말 _ 강인한

강인한 시에 대한 단평들 _ 전해수/ 강경희/ 이숭원/ 김석준/ 장이지/ 고성만/ 김유중/ 복효근/ 한혜영/ 신지혜

  

제1부 오후의 실루엣

일획/오후의 실루엣/장미의 독/바다의 악보/능소화를 피운 담쟁이/사랑의 기쁨/낯선 시간 앞에서/열차가 지나가는 배경/루체비스타/사랑의 간격/자작나무 숲/금환식(金環蝕)/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밤의 회전목마/잔설(殘雪)/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드는 여자

  

제2부 빈 손의 기억

달맞이꽃/폭우/사당역 레일아트/블루 누드/섬에서 섬으로/빈 손의 기억/오전 열 시, 우리 동네/늦은 봄날/가까운 미래/밤의 메트로/멀리 보이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겨울 안면도/우기(雨期)의 강/시들지 마라 원추리꽃/발다로의 연인들/벚나무 아래서 보내는 편지

  

제3부 봄꿈  

내 손에 남은 봄/바람이 센 날의 풍경/평생의 집/감전(感電) 1/비의 향기/마음이 새고 있다/봄꿈/감전(感電) 2/가을 골짜기/하늘의 물고기/입술/파업/신들의 놀이터/밀물/우울한 당구/목련 개화

  

제4부 호주머니 속 악어

자작나무 그 여자/마리안느 페이스풀/성자(聖者)/살구나무 아래/꽃의 말씀/한 방울의 물/타이드크랙/숲길 산책/호주머니 속 악어/잔다리목에서 싸리재까지/달이 떠오를 때까지/마른 우물/꽃잎, 저 꽃잎들/겨울나무의 기억에 대하여/입맞춤, 혹은 상처/8번 출구로 가는 길

 

 

  

시인이 추천하는 시집_ 강인한의 『입술』

타나토스를 관통하는 뜨겁고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


  정 수 경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40년 넘게 장인적 기질과 예술가적 열정으로 시 창작 활동을 해온 강인한 시인은 이미 일곱 권의 시집으로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에 처음 입문할 때의 초심 “목숨을 걸고 쓴다” 라고 여전히 말하는 여덟 번째 시집 원고를 투고하는 출판사마다 퇴짜를 맞아야했다는 사실을 수상소감에서 읽었을 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중앙문단 활동을 하지 않은 덕분이었으리라. 또한 강직한 시인의 성격 탓에 시단과 어울리지 못한 까닭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삶을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볼 60대 시인이 쓴 시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시집, 심미주의적 관능미와 열정적 긴장감을 간직한 시집 『입술』은 그런 시집이었다.


  “가능하면 나는 처음 시단에 나서는 열렬한 청년의 자세로 시를 썼”음을 고백하는 시집 『입술』에 쓴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시인의 생에 대한 열정과 젊음을 유지하는 자세를 주목해야한다. 몇 년째 운영하는 카페를 통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좋은 시를 직접 베껴쓰기하며 젊은 시인들의 불통의 시까지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이 청년의 가슴으로 쏟아낸 시집『입술』에는 영화, 미술, 그리고 인접 문학을 넘나들며 완벽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장인적 기질이 언어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담금질한 시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시집 『입술』에는 시인이 평소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는 아름다움과 상상력과 재미를 맘껏 누릴 수 있는 타나토스(죽음)를 관통하는 심미주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 느닷없는 입맞춤이

      나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너를 가만히 끌어올리고

      한 개의 작은 달걀을 두 손으로 감싸듯이

      플루토에서 온 이 얼굴을 바라본다

      스무 살 성처녀, 네 머리칼에서

      희미하게 라일락 향기가 떠돌았고

      더운 내 입술은

      너의 눈 위에 포개졌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음 날

      새가 날아갔다,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입맞춤, 혹은 상처


    「달맞이꽃」,「시들지 마라 원추리꽃」, 「발다로의 연인들」, 「하늘의 물고기」, 「달이 떠오를 때까지」, 「입술」, 「감전1」, 「일획」,「입맞춤, 혹은 상처」,「겨울 안면도」등의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의 시에서 보이는 존재의 내면에 자리한 그리움에 대한 이끌림은 ‘다섯 살배기/ 입가에 묻은 하얀 흔적처럼’ ‘먼 훗날에/둥그런 달무리 ’이었다가(「달맞이꽃」) 때로는


      독화살이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을 끊은

      콸콸 더운 피를 끄집어낸 곳, 여기쯤인가 부러진 뼈 한 도막

      몇 날 몇 밤의 증오를 순순히 받아들인 곳

      피는 굳고, 벌들이 찾던 꽃향기는 언제 희미해진 것일까


      (중략)


      침묵으로 말하노니

      손대지 마라, 우리들 기나긴 사랑의 포옹을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곳,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곳이라면

      우리 이대로 다시 몇 천 년이라도 견디고 견딜 것이니.


                                —발다로의 연인들 (부분)


   이러한 굳은 의지였다가 ‘백 년 전에도 너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 시들지 마라 오랜 옛날에도 아름다웠던 사랑/오늘 다시 네 앞에 꽃피울 사람 있'어야 한다는 ’기원이었다가 (「시들지 마라 원추리꽃」), 잠든 돌 심지에 문득 불이 붙어 꿈도 없는 긴 밤을 지피는 시퍼런 불꽃을 피워내기도 하며(「감전1」), ‘ 심장에 깊숙이 박힌/미늘,/그 분홍빛 입술’(「입술」)의 절정의 감성은 시 「일획」에 이르러서는 정결하고 순정한 혼이 흰 속살을 드러내며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수액의 향기와 같은 언어의 관능미로 살아 있다.

  강인한 시인의 시집『입술』 에 담긴 시 세계에는 젊음과 열정의 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그것이 속되거나 지나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어에 대한 탁월한 미학과 탄탄한 구조를 지닌 바, 언어예술의 모범을 보였다 할 것이다. 이 시집에는 흔한 시 해설이 없다. 독자가 시를 읽는 내내 즐거움과 기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가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둔 것이다.

  나이를 무기 삼아 세상을 달관한 듯한 시를 쓰는 일에 자족하지 않고 매일 매순간 초심으로 돌아가 청년으로 살고 사랑한 시들, 시인의 말을 빌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 갈망하는 강인한 시인의 시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ㅡ《웹진 시인광장》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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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경/ 경북 문경 출생. 2008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등단.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정수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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