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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이홍섭의 「나무의자」평설 / 홍일표

오선민 2011. 5. 31. 11:42

이홍섭의 「나무의자」평설 / 홍일표

 

 

나무의자

 

   이홍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는 툭 하면 차를 바꾼다. 몸이 차의 안락에 적응하면 자기 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귀화 요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조국 웨일즈를 고수해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툭 하면 차를 바꾸며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가난한 나는 차 대신 툭 하면 의자를 바꾼다. 기어코 딱딱한 나무의자로 되돌아와 척추를 곧추 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나에게 귀화해달라고 애걸하는 나라는 없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 남루한 조국을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대신 툭 하면 의자나 바꾸며 살아가려 한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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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시학

 

   뻔한 일상을 소재로 한 시는 자칫 진부해지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별다른 고민이나 사유 없이 기존의 시작 방법을 그대로 따를 경우 감동보다는 동어반복의 지루함이 앞서게 됩니다. 아직도 80년대식 올드패션을 고수하면서 그것만이 시의 진정성을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환경과 생명 등을 운운하면서 어설프게 독자를 계몽하려 들거나 어떤 깨우침을 의도하는 시, 걸핏하면 불경이나 노자 장자를 거론하면서 도사연하는 시들을 보면 염증을 넘어 이제 연민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홍섭 시인은 일상의 친숙한 소재를 낯선 방법으로 형상화하여 시적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1연은 라이언 긱스가 자주 차를 바꾸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몸이 차의 안락에 적응하면 자기 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매우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몸과 사물의 관계를 매우 정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차가 의자로 전치되어 나타날 뿐 큰 차이는 없습니다. ‘남루한 조국’은 버릴 수 없는 삶의 원질이겠지요. 라이언 긱스가 그러했듯 화자도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바탕을 버리지 않습니다. 대신 자주 의자를 바꾸며 척추를 곧추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합니다. 의자의 안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시인의 의지요 삶의 결기입니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다’는 단호하고 엄정한 삶의 자세가 이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의 뼈요 척추인 셈이지요.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매 순간 혁신과 탈주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화자의 의지가 자못 결연하기까지 합니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시지만 한 번 읽고 던져버리는 시가 아니라 거듭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것이 좋은 시의 한 전형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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