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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의 언어, 지속적 기억의 현현 본문

시 비평

물수제비의 언어, 지속적 기억의 현현

오선민 2011. 6. 6. 09:50

물수제비의 언어, 지속적 기억의 현현

- 강인한 시집, 『입술』서평

박 강

 

 

   이 신작 시집에 대한 글을 청탁 받고, 시집의 첫 머리글을 펼쳐 본 후 나는 한동안 시집을 덮고서 지내야 했다. 개인적으로 분초를 다투는 매우 바쁜 어떤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탓이다. 하지만 시집 첫 머리에 써져 있는 시인의 자서가 이상하리만치 종종 내 머릿속에 회부되곤 했는데, 본격적으로 시들을 읽게 되면 그 자서의 시적 구현물들을, 더 정확히 말해 그 성공 여부를 꼭 확인해 보리라는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시집의 서문에서 강인한 시인은 이렇게 썼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얼핏 보면 어느 순문학주의자의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진술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집 전편에 걸쳐 이 명제를 육화하기가 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학 청년의 초심적 열정으로 돌아가, 불가능해 보이는 시의 이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시집의 발문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본질을 언어에서 찾겠다는 것은 시를 여타의 사상이나 담론에 종속시키지 않겠다는 시관의 표명일 것이고, 자신의 영혼을 시 안에 응축시키겠다는 것은 시적 언어의 궁구에서 시작하되 시적인 말들의 화려한 잔치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일 것이다.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 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 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저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 「빈 손의 기억」 전문

 

   이번 시집의 뛰어나게 좋은 시들 중 하나인 이 시야말로 시적인 언어와 영혼에 대한 시인의 강조를 잘 대변해 보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평소에 나는 ‘시에 대한 시’ 즉, 이천 년대 전반에 한때 유행한 적이 있는 소위 메타시의 시적 성취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 왔다. 시론의 옷을 입은 산문의 영역으로 사실상 떨어져서 시 자체의 작품성을 훼손하기 십상이었거니와, 무엇보다도 시에 대한 그럴 듯하면서도 단호한 정의들이 오히려 여러 회의적 의문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는 ‘시란 무엇이며 어때야 한다’는 식으로 종용하지 않으면서도, 시적 창조 과정의 섬세한 비밀을 성공적인 표현들에 녹여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간단히 말해, 시에 대한 시이면서도 ‘시’라는 시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시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시가 성공적인 메타시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강물과 그 속에 잠겨 있는 돌에서 ‘어떤 마음’과 ‘파닥거리는 비상飛上의 힘’을 느꼈는데, 그 돌의 촉각성을 갓 태어난 알의 이미지로 변주한 감각이 비상非常하다. 뿐만 아니라, 힘껏 던진 물수제비용 돌이 강물에 살짝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그 날렵한 운동 감각을 강물의 ‘차갑고 짧은 입맞춤’으로 처리한 상상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물수제비에 대한 이 같은 참신하고도 감각적인 진술들로 인해 작품 자체의 시적 성취가 확보됐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도 이 시를 읽는 즐거움은 크다. 게다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물수제비의 감각적 진술들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시 창작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암시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일어나는 시적 비약이야말로 이 시에 숨겨진 진정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들은 제 손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어를 조약돌처럼 만지작대야만 하는가. 또 돌처럼 단단해진 시어들을 강물이라는 의식의 흐름에 얼마나 수없이 던져대야 하는가. 그렇게 던진 시어들이 물수제비처럼 의식의 강물에 찰싹 찰싹 붙었다가 떨어지는 그 부딪침의 섬광 속에서 한 줄 한 줄의 시가 탄생한다. 시인은 그렇게 탄생하는 시 한 줄 한 줄을 ‘꽃송이들’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 꽃송이들이 일으키는 “저 아름다운 물의 언어”, 그 파문의 정체를 그러나 정작 시인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즉,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수제비를 던지듯 사력을 다하여 시어들을 던져라. 그래야만 꽃송이 같은 아름다운 시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하는 시가 반드시 어떠한 무늬를 띠어야 한다고 예상하거나 통제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시의 궁극적 개화는 시인의 권한 밖의 일이다. 즉 신비이다. 다만 시인은 조약돌처럼 단단한 시어들을 만들어 온 힘을 다해 던질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이 시의 마지막 대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이라는 진술이 그것이다. 시집 전반에 걸쳐 시인은 유독 ‘기억’이나 ‘추억’이라는 낱말을 많이 구사한다. 사실 기억, 추억, 시간, 그리움 따위의 시어들은 오늘날 시에서 사어가 된 지 오래이다. 아니, 사어라기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특별관리 대상이 된 시어들일 것이다. 이전에 너무 많은 시인들이 다루었기에 그만큼 성공적인 표현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은 낱말들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위험 가능성이 높은 시어들을 종종 선택하여 활용한 이 시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써서는 곤란하므로 쓰면 무조건 실패다 라는 식으로 단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 될 것이다. 한 편의 시에서보다는 시집 전체의 테마 안에서 기억이나 추억 같은 낱말들이 활성시키는 유기적 작용들이 존재하며, 그러므로 시집 전체 테마의 지형도를 파악하여 그 안에서 각각의 낱말들이 차지한 위상학적 가치를 측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강인한의 시집은 분명 그렇게 읽어야 한다.

   하지만 지면 분량의 제약상 이 시집의 곳곳에 구사된 기억, 추억, 그리움 등의 시적 함수관계에 대해 분석해 보일 형편은 못된다. 다만 간략하게 말해볼 수는 있겠다. 이 시집은 곳곳에서 사랑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피력해보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근원적으로 서로에게 단독자이다. “당신은 내 앞에/ 떠 있다./ 강이 있고/ 건너편에는 내가 있다”(「오후의 실루엣」).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놓인 간극을 극복하여 하나가 될 수 있는데, 이 같은 합일에는 희생이 뒤따르며 이 사랑의 희생이야말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살이 여위고/ 희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못 이룬다”(「장미의 독」)라고 시인은 말한다. 또 다른 시 「사랑의 기쁨」은 ‘너’를 도와준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희생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사랑에 대해 진술한다. 이 같은 희생 모티프가 가장 잘 구현된 사례가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일 것이다. 능소화의 성장과 개화를 위해 몸을 기꺼이 빌려준 담쟁이를 이야기한 이 시는 사랑의 희생을 넘어서 운명공동체로 함께 흔들리는 두 사물의 공존적 움직임을 잔잔한 어조로 전달해준다.

 

   그의 시들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희생하는 사랑의 주체가 언제나 수동성의 주체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희생’이라는 말이 지닌 적극성과 달리, 그의 시에서 정작 희생하는 이는 언제나 어느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부동의 존재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집에는 유난히 나무 이미지가 빈번하다. 「열차가 지나가는 배경」이란 시는 벚나무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결국 떠나버린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 읽고 나면 이 시의 진짜 주인공은 떠나간 그를 기다리는 벚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보자.

 

   주소불명의 캄캄한 거리에서

   나도 그렇게 헤맨 날이 있었다.

   사랑이여

   내가 그대에게 드릴 것은 빈손뿐일지라도

   우리 둘이 참새처럼 걷던

   잎 진 나무들의 짧은 손길, 손금 사이로 흐르는

   은빛 물결과 빛나는 햇살을 기억하나니

   (……)

   사랑이여

   눈이 맑은 이여

   비 맞는 검은 가지마다 환하게 등을 밝히기 전

   목련나무는 한참을 더 아파야 한다

   더 아파야만 한다.

      - 「겨울나무의 기억에 대하여」 부분

 

   「열차가 지나가는 배경」이 시집 1부에 있는 시였다면, 이 시는 시집의 거의 맨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목련나무를 다루고 있지만, 더 자세히 읽어보면 「열차가 지나가는 배경」 속의 벚나무로 더 깊이 들어가 그 벚나무의 내적 목소리를 전달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끝으로 이 시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는 이 시가 이번 시집의 여러 특징적 요소들을 한데 모아놓은 일종의 압축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무를 소재로 하여, 제목에서는 ‘기억’을, 본문에서는 ‘사랑’을 제시하였고, 마지막에서는 그 사랑의 희생과 아픔을 강조하고 있다. 강인한의 시에서 ‘기억’이란 어휘는 그저 관습적으로 쓰인 죽은 시어가 아니다. 목련나무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대’와 함께 누렸던 “은빛 물결과 빛나는 햇살”인데, 이 찬란했던 청춘의 경험이 목련나무의 지속적 기억을 이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에 나오는 마들렌 과자 냄새처럼, 목련나무에게 짧고도 찬란했던 그 사랑의 경험은 원초적 기억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으며, 어떤 예기치 않은 지금 여기의 순간에서 생생하게 현현 가능한 기억에 해당한다.

  시인은 그 생생하고도 지속적인 기억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지느러미가 슬프게 빛나고”(「달이 떠오를 때까지」) 있다고 말한다. 시집의 표제작인 「입술」을 보라. “내가 엎질러 버린 기억의 어디쯤/ 흐르다 멈춘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집은 그 정지한 듯한 영원하고도 생생한 기억을 재생하고 있으며, 시인이 강조하는 그 원초적 기억들은 ‘분홍빛 입술’이라는 사랑의 경험과 일정하게 매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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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강 / 2007년 <문학사상> 시 부문 등단⋅Email:jsys78@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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