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울트라 마린, 푸른 꽃 (외 1편) / 정영숙 본문
울트라 마린, 푸른 꽃 (외 1편)
정영숙
내 몸 안에는
마이크로폰을 지닌
마트로시카가 들어 있어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음색의 선인장 꽃을 피운다
나무로 만든 꼬마 인형들을 하나씩 꺼내놓고
실로폰 채로 머리를 두들기면
아리조나 사막에서 보았던
줄기마다 색색의 꽃을 피우던 선인장
바람의 강도와 햇빛이 받는 각도에 따라
진분홍 조개빛, 연보라의 별빛, 울트라 마린의 바다빛
각기 다른 음색의 꽃을 피운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각양각색의 빛깔로 피어나는
나의 마트로시카
바다 저편에 있는 그대여
이 뜨거운 여름 한낮
잔잔한 G음의 트레몰로로
내 흔들리는 머리를 연주해 주려무나
내 심장부에 있는
지중해 빛 닮은 울트라 마린
푸른 꽃으로 피워
그대 있는 곳으로 헤엄쳐 가리
하늘새 2
—뼈만 남은 언어
홀로 고공을 날며 땅에 내려오지 않으리
어중이떠중이 새들이 사는 땅
갈고 닦은 은빛 날개를 넘보며
먹을 수 없는 언어를
설사 입에 넣는대도 소화불량의 언어를
낚아채어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하는
하찮은 것들이 득실대는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리
4,000m 고공을 비행하다 은빛 날개를 잃는다 해도
칼바람에 하얀 뼛가루로 부서진다 해도
이 땅에 내려오지 않으리
눈 붙일 곳 없는 황량한 하늘 가
핏발 선 눈으로 경계를 풀 수 없을지라도
큰 날개를 펼쳐 하늘을 품으리
묻힐 무덤이 없어도 죽는 날까지
인디오의 자존심을 하늘에 심으며
결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으리
나는 콘도르의 뼈를 깎아 만든 피리를 불며
홀로 외롭게 반짝이던 그의 영혼을 생각하며
뼈만 남은 나의 언어를
찬바람 부는 겨울 하늘에 뿌린다
—시집 『하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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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 1947년 경북 대구 출생. 서울교육대학 졸업. 1993년 시집 『숲은 그대를 부르리』로 등단. 시집 『지상의 한 잎 사랑』『물속의 사원』『웅딘느의 집』『하늘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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