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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백 (외 1편) / 배옥주 본문

좋은 시 감상

스위치 백 (외 1편) / 배옥주

오선민 2011. 7. 28. 18:25

스위치 백 (외 1편)

 

   배옥주

 

 

 

   기차소리가 덜컹거리는 시장 모퉁이, 그녀 선짓국을 끓인다 녹슨 레일 같은 도마 위에 한 사내가 누워 있다 벼랑 끝을 왕복하던 지난날의 궤도, 지워버리고 싶은 입덧 사이로 협궤열차가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기찻길 옆 국밥집〉간판 위로 지나가는 낡은 기적, 불면의 밤들이 끓어 넘친다 충혈된 시간의 거품을 걷어내면 다음 생은 환해질까 하수구에 엉킨 나날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내일을 쿨럭거리고 사내는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졸아드는 국물 속으로 가라앉는 그믐, 어둠은 참았던 하혈을 시작하고 차선을 바꾼 기차가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덜컹,

 

 

 

오후의 지퍼들

 

 

 

지퍼를 열자 여자들이 쏟아진다

필러 맞은 입 밖으로 뛰쳐나오는 수다들

루비똥이 쏟아지고 포르쉐가 쏟아지고

아이들이 쏟아지고 남편들이 쏟아지고

카푸치노 속으로 다시 빨려가 회오리치는

수다들의 향연

왼쪽으로 저었다가 오른쪽으로 저었다가

내연녀와 짜고 아내 죽인 남편이 쏟아지고

도덕이 쏟아지고 애인이 쏟아지고

주상복합단지가 쏟아지고 콘도가 쏟아지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 〈오후 3시〉

통유리 위로 나른한 평화가 쏟아진다

저마다 속내 하나씩 지퍼 안에 감추고

벌어진 지퍼를 닫을 줄 모르는 지퍼들

에스프레소를 삼키며 재개발이 쏟아지고

창밖엔 지퍼를 열어

오늘의 갈매기들을 날려 보내는 수평선

원피스 속, 어제보다 뚱뚱해진 욕망을 감춘 채

오후 3시의 지퍼를 열고

우아하게 걸어나가는 지퍼들의 뒷굽

 

 

 

                           —《현대시학》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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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주 / 1962년 부산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2008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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