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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질마재해오름문학상] / 눈의 심장을 받았네 (외 2편) / 길상호 본문

좋은 시 감상

[제2회 질마재해오름문학상] / 눈의 심장을 받았네 (외 2편) / 길상호

오선민 2011. 7. 27. 15:44

 

[제2회 질마재해오름문학상]

 

 

눈의 심장을 받았네 (외 2편)

 

 

  길상호

 

 

 

 

 

당신은

새벽 첫눈을 뭉쳐

바닥에 내려놓았네

 

 

그것은

내가 굴리며 살아야 할

차가운 심장이었네

 

 

눈 뭉치에 기록된

어지러운 지문 때문에

바짝 얼어붙기도 했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심장을 쥐어오던

당신의 손,

 

 

온기를 기억하는

눈의 심장이

가끔 녹아 흐를 때 있네

 

 

 

 

 

蓮의 귀

 

 

 

 

 

蓮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온다

 

물속에 가부좌를 틀고

 

蓮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 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스프링노트

 

 

 

 

 

반쪽 몸의 사내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한다

딱딱해진 말의 언어 말고

신경이 살아 있는 문자 언어로

머리맡 노트에 적는다

—올해 봄은 냄새가 어떤가?

여보, 목련 좀 꺾어다 줘

 

 

주문서를 받아든 아내가 급히

목련 사발을 들고 온다

봄맛에 빠져 있는

반신불수 사내를 엎어놓고

물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가운데 박혀 있는 등뼈가

오래 쓴 스프링처럼 구부러졌다

 

 

사용한 페이지에 비해

남은 페이지가 너무 얇은 노트,

—올해는 냄새가 더 줄었네

그새 거뭇해진 목련 꽃잎처럼

그의 스프링노트 한 장

또 과거 쪽으로 넘어간다

 

 

 

 

                            —《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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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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