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제2회 질마재해오름문학상] / 눈의 심장을 받았네 (외 2편) / 길상호 본문
[제2회 질마재해오름문학상]
눈의 심장을 받았네 (외 2편)
길상호
당신은
새벽 첫눈을 뭉쳐
바닥에 내려놓았네
그것은
내가 굴리며 살아야 할
차가운 심장이었네
눈 뭉치에 기록된
어지러운 지문 때문에
바짝 얼어붙기도 했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심장을 쥐어오던
당신의 손,
온기를 기억하는
눈의 심장이
가끔 녹아 흐를 때 있네
蓮의 귀
蓮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온다
물속에 가부좌를 틀고
蓮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 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스프링노트
반쪽 몸의 사내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한다
딱딱해진 말의 언어 말고
신경이 살아 있는 문자 언어로
머리맡 노트에 적는다
—올해 봄은 냄새가 어떤가?
여보, 목련 좀 꺾어다 줘
주문서를 받아든 아내가 급히
목련 사발을 들고 온다
봄맛에 빠져 있는
반신불수 사내를 엎어놓고
물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가운데 박혀 있는 등뼈가
오래 쓴 스프링처럼 구부러졌다
사용한 페이지에 비해
남은 페이지가 너무 얇은 노트,
—올해는 냄새가 더 줄었네
그새 거뭇해진 목련 꽃잎처럼
그의 스프링노트 한 장
또 과거 쪽으로 넘어간다
—《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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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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