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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청어 / 이정훈

오선민 2013. 11. 29. 16:38

청어

 

   이정훈

 

 

 

눈이나 감고 죽지,

어물전 청어 보면 할애비 생각

 

청어 한 번 먹었으면

석 달 열흘 소 떼 몰고 다니다

추적추적 비 내리던 늦가을 저녁

원산元山 어름 주막집 봉노

그 청어를 먹었으면

 

엄마와 형이

주문진으로 강릉으로 암만 다녀봐도

청어는 그 무렵 보이질 않아

 

죽어서도 그리운 먼 북쪽이란

잇바디에 새어나가던 물거품의 기억이란

화로의 기름연기처럼

할애비 등판에 무럭무럭 김 오를 때

나는 청어 새끼

어느 물밑을 떠돌고 있었을까

 

눈에서 자라난 것들이 눈보다 더 커져

몸보다 더 무거워져

아가미 가득 배어 나오는 소금 물살

알전구보다 환한 빛으로

원산 바다를 건너고 북태평양을 지나고

수평선 가득 노란 알이 지천이라는

청어들의 바다에서

아아, 입 벌리고

 

눈이라도 쓸어줄까,

얼음상자 속 저 푸른 빛

 

 

 

                      —《현대시》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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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1967년 강원 평창 출생. 강원대 졸업. 2013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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