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미늘과의 포옹 / 한석호 본문
미늘과의 포옹
한석호
꽃의 이면에서 서성이는 불면들은 아직도
누군가를 부르는 간절한 호명,
당신이라는 조리개 밖에 방점을 찍고 나니
개 짖는 소리가 낡은 인화지 속에서 뛰어나온다.
그늘의 내장에서 꺼낸 침전물들은
오래된 오해가 답보한 부유물들,
흩어지기 위해 쌓이는 모래알들이
한때 바람이었던 발자국의 어제를 지운다.
침묵을 놓고 간 자의 서명들이
유예가 가능한 품목들의 표지를 장식한다.
미욱했던 시간 앞에서는 사랑도
고해성사하듯 옷깃을 여며야 한다고 쓴다.
죽은 꽃들이 터뜨리는 셔터 소리가
찌 끝에 형광색 물보라를 세우고 있다.
그대라는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오늘 밤엔
부호를 깊게 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앵글 속 시간이 상처를 다시 포옹할지 모르므로.
—《문장 웹진》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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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 1958년 경남 산청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 현재 서울 중부경찰서 근무. 시집『이슬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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