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창(窓) 이야기 / 이동훈 <유진의 시읽기> 본문
☛ 서울일보/ 2014.2.11(화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창(窓) 이야기
이동훈
경사 따라 기우듬한 집, 낮은 창은
저녁이면 형광등 아래 고깃점 같은 남루를 걱정하는
내 자존감의 높이었다.
지붕과 담벼락 사이를 핥고 오느라 기진해진 빛은
발바닥만 한 창에 걸렸다가
유년의 발치에 매가리 없이 쓰러지곤 했으니
그때부터 나는 바닥과 고요와 어둠에 익숙해졌겠다.
창을 열어도 별 볼일 없거나
베니어판으로 창을 봉하기도 하는 곁방살이로
주소지가 매번 바뀌어 갔으니 빛은 늘 미미했다.
외지로 나가 밥벌이하고서야 벽 한 면이 창인 집을 얻어
밀린 빚 같은 빛을 한꺼번에 다 받는데
그 창으로 도둑이 들어
환한 햇살에도 눈살 찌푸릴 일 있다는 걸 배워야했다.
빛에 주린 보상일까, 창이 많은 직장을 얻었다.
한 줄기 햇살에 손가락을 살짝 대니
빛이 설레발치며
야단치는 이맛살에도 반성문 쓰는 뒤통수에도
주름 없이 뿌려지는 것 아닌가.
토요일 오후 같은 마음이 바닥에 널렸다가
누군가 창을 여닫는 소리에
깨진 풍경이 급히 저장되고 익숙한 어둠이 기웃한다.
◆시 읽기◆
우리는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속성을 가졌다. 늘 빛을 보고 살지만 어둠 밖의 밝음에만 익숙하고, 세상적인 이름과 겉모습에 더 익숙해져 있다. 화려하고 환한 빛 속에 눈살 찌푸릴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으면서도 바닥과 고요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회피한다. 외형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우쭐거림과 불신, 원망과 회한을 겪게 된다. 그러나 어떤가? 바닥과 고요와 어둠의 겉모습은 곤궁과 우울이지만, 그 내면은 평평하고 잠잠하다. 조용한 묵상과 소망이 있고, 겸손의 미덕을 배우게 되는 곳이다. 바닥과 고요와 어둠에 익숙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되며, 스스로 낮아질 줄 안다는 것과 통한다. 이는 성장 뒤에 오는 성숙과도 통한다.
시인은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는 창 많은 교실에서 한 줄기 햇살에 손가락을 살짝 대보는 겸손한 선생이다. 야단치는 이맛살에도 반성문 쓰는 뒤통수에도 주름 없이 뿌려지는 햇살 한줄기에 토요일 오후 같은 마음이 바닥에 널렸다고 한다. 작은 것에도 고마워 할 줄 아는 선생이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묵상할 줄 알고, 스스로 낮아질 줄 아는 품성을 지닌 성숙한사람이다. 이는 빛에 주린 유년을 보낸 덕분이 아닐까?
빛의 진정한 밝음이란 바닥과 고요와 어둠을 수용한 밝음일 것이다.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진정한 밝음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은밀한 속내까지 포함된 저마다의 색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빛 속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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