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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플라타너스 모텔 / 김미지

오선민 2015. 4. 10. 08:51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플라타너스 모텔

 

 

김미지

 

 

초록이 무섭다

 

초록에서 초록으로 깊어가는 초록의 유목

 

초록에서 초록으로 이어지는 물의 유목

 

 

    나무 둥치에 청진기를 갖다 대면 종일 물소리

 

누가 샤워를 하고 있나 보다

 

줄지은 플라타너스 모텔 속으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왔다

 

조금 전 젊은 연인이 그 나무 아래서 사라졌다

 

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듬지까지 올라가면

 

수 갈래 복도가 나오고 빼곡히 들어차 있는 물의 방들

 

낡아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접수부도

 

자동차 가리개도 없는 무전숙박

 

햇살과 바람이 일렁이는 곳은 다 방이 되는

 

아주 오래된 모텔

 

 

     우듬지 오른쪽 객실 쪽에서

 

스타킹 한 짝이 보도에 떨어졌다

 

또르르 말린 갈색 이파리 한 장

 

바람이 격렬해질 때 초록도 초록을 벗어던진다

 

 

 

 

 

 

 

ㅡ출처 : 『대구의詩』(대구시인협회,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초록은 흔히 평화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봄부터 가을까지 초록으로 물든 잎 달린 나무들을 보면

 

이 시인처럼 ‘플라타너스 모텔’이라는 생각 더러 하지 싶다

 

초록 속에서의 유목, 물의 유목 참 재밌다

 

물관을 타고 오르내릴 물의 유목

 

방금 연인이 들었는데 사라졌다고 했던가

 

나무는 오래된 초록 모텔, 고목이 되어 갈수록

 

명품 초록을 단다

 

나무도 생명을 관장하는 것이라

 

건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잎을 보면 안다

 

‘또르르 말린 갈색 이파리 한 장

 

바람이 격렬해질 때 초록도 초록을 벗어던진다‘

 

이것은 아픔이 아니라 순리다

 

 

 

햇살과 바람이 일렁이는 곳은 다 방이 되는

 

아주 오래된 모텔에 방 하나 예약하고 싶다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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