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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가흠의 문인보 | 시인 이문재

오선민 2015. 4. 10. 10:04

 백가흠의 문인보 | 시인 이문재

 

                                                                           글 백가흠 / 사진 백다흠

 

 

그는 가만히 눈, 감는다

 

그와 탁구를 친 적이 있다. 원주토지문화관에서였다.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알고 있던 사람들을 다시 알게 되었다. 같이 밥 먹고 함께 산책하고 술을 마시고 마주 보고 탁구를 친다는 것은 사람을 깨닫는 일이다. 그곳에서 물론 글도 썼지만 그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일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함께였다. 주로 점심을 먹은 후에 그와 탁구를 쳤는데 그는 점수를 내는 방식이 유달랐다. 보통의 탁구는 승부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내가 보낸 공을 받지 못하게 탁구를 쳤는데 그의 게임 방식은 조금 달랐다. 그는 서로 공을 보낸 횟수를 셌다. 상대가 보낸 공을 받아넘겨야 하는 것은 같았으나 공을 넘기는 목적이 상대가 공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자신이 공을 받기 위해서였다. 각자의 점수는 없었고 우리의 점수만 있었다. 서로 공을 50번 받았으면 우리의 점수는 100점이 되었다. 공을 떨어뜨릴까봐 조심스러웠다. 우리의 점수를 내 실수 때문에 망가뜨릴까봐 열심이었다. 이기기 위해 탁구를 치지 않는 유일한 게임이었다. 경쟁이나 승부 대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공을 떨어뜨려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승부가 없음에도 그곳에 스릴이 있었다. 상대가 받아넘기기 좋게 공을 보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그가 만든 게임의 진의다. 50번을 향해, 우리의 100점을 향해 공을 보내는 완벽한 배려가 우리가 함께 이루어내야 하는 목표라는 것, 그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 승부를 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라는 것, 그와 탁구를 치며 깨달았다.

 


 

언젠가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그가 우두커니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뭐하세요? 안 주무셨어요? 아마 술자리가 파하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사라진 후 그는 먼 산책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언젠가도 썼듯이 허한 마음이 사람을 장사로 만든다. 모든 시인은 그리하여 장사다.

“네가 무슨 꿈을 꾸는지 보러 왔지. 넌 벌써 기억 못하겠지만 내가 다 봤으니 나중에 알려줄게. 아침 먹어라.”

그가 고추밭에서 막 따온 고추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빨갛고 하나는 퍼렇다.

“이거 주려고 그냥 들어왔어. 고추가 아주 달고 맵다. 빨간 고추는 빨갛게 달고 아직 안 빨간 고추는 퍼렇게 달고 맵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건넨 고추를 우적우적 씹었다. 그가 말하는 달고 매운 맛을 나는 아직 잘 몰랐다.

“일어났으니 우리 음악 듣자.”

그가 내 방에 들르는 이유는 또 있었다. 내 방에는 LP플레이어가 딸린 작은 미니콤포넌트가 있었는데, 우리는 나란히 앉아 판소리를 듣거나 창부가를 들었다. 무릎을 치며 장단을 맞추거나 흥얼거리기도 했다. 가끔은 쇼팽이나 바흐도 들었다. 때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시인은 눈을 감을 때 먼 곳에 있는 무엇을 본다. 그가 내가 꾸는 꿈을 들여다보듯이 나도 엿보고 싶었으나 알 길 없었다.

그의 가족이 원주에 들른 적이 있다. 그의 아내도 아들도 처음 보았다. 같이 기거하던 선배 소설가 둘과 나는 그의 가족에게 뭔가 선물 같은 것을 하고 싶어 돗자리를 들고 우리만 아는 계곡으로 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많이 아팠는데 물빛처럼 그 표정이 매우 맑아서 우리는 마음이 더 많이 아팠다. 밖으로 나온 게 오랜만이어서 어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물었고 아버지는 대답했다. 고기는 왜 물에서 사는지, 물가에 자란 풀이름은 무엇인지, 물은 왜 흘러야만 하는지 아들은 물었고 아버지는 대답했다. 멀찍이 떨어져 우리는 부자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물음도 맑았고 아버지 대답도 맑았다. 그래서인가 그럴 일도 아닌데 한여름인데도 괜히 마음이 시렸다. 계곡물도 겨울처럼 차가웠다.


 

그는 종종 눈을 감고 무언가를 바라본다. 시인이 눈을 꼭 감을 때 세상의 시간이 멈춘다.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거나 너울거리는 햇빛의 움직임을 좇으며 젖은 기억의 저편을 눈을 감고 바라볼 때 시간은 멈춘다. 시인은 무엇인가를 보려 할 때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서 이파리의 떨림이나 나무들의 숨죽임을 바라본다. 시인만이 오로지 세상에 흘러가는 이 긴 현생이라는 시간의 강박을 피할 수 있다. 감은 눈 속에 그는 억겁의 시간을 건너고 있다. 몇 생을 거듭한 전생을 오고간다. 지금 현재의 터무니없는 시간을 질책한다. 시인이 눈을 가만히 감고 있을 때 감은 눈 속에서 시인은 저 멀리 간다, 사라진다. 자신은 사라지고 바라본 것만 남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찰나의 시간을 산다.

그가 살아온 현생의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하나 그가 쓴 시의 시간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바쁜 사람이다. 오랜 시간 밥벌이 기자로 살았고 시간의 찰나엔 시인으로 살았고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 번도 가장이 아니었던 적이 없고 세상에 애도하지 않았던 순간 없이 부지런히 글을 쓰며 살았다. 그를 최근에 본 것은 한 지인의 결혼식에서였다. 장소가 명동성당이었는데 본당에는 처음 들어와 본 터라 이곳저곳 눈으로 좇던 중, 그가 하객들과 멀찍이 떨어져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의 옆에 가서 앉았다. 가벼운 근황을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먼저 일어서는 그를 배웅했다.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 여운이 길다. 멀어지는 그의 굽은 어깨를 바라보며 오래전 원주에서 함께 보냈던 한 철이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그의 시가 귓가에 맴돌았음은 당연하다.

고백컨대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자랐다. 그래서 시 같은 것을 써 보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나는 금요일 생이다’(‘생일주간’)나 ‘그는 두꺼운 그늘로 옷을 짓는다’(‘내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 같은 첫 구절을 외웠다가 누군가에게 수줍게 들려주곤 했다.

근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을 앞에 두고 있다. 틈틈이 그가 보낸 지난 십 년의 시간이 숨죽이고 앉아 있다. 시에서 시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오래된 기도’) 사랑을 놓친 손을 붙잡아야 하는 손에 대해,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그림자와 다시 조우하는 것에 대해, 살아 있어야 하는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순간, 그는 가만히 눈, 감는다.

▲ 시인 이문재

1959년 경기 김포(현 인천 서구)에서 나고 자랐다.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국호텔> <마음의 오지> <산책시편>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가 있다.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내가 만난 시와 시인>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

 

    글. 백가흠 | 소설가 

    사진. 백다흠 | 은행나무 편집자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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