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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가흠의 문인보 | 시인 강정

오선민 2015. 4. 10. 10:05

백가흠의 문인보 | 시인 강정

  글 : 백가흠 사진 : 백다흠

 

 

ㆍ그는 너무 앞서 태어났다… 이를테면 ‘강정사전’ 같은 것

 

주요 뜻:

1. 강정은 노래이자 곧 시다. 시인밖에는 할 수 없는, 진짜 시인의 이름이다. 그는 세상에 없는 슬픈 선율만 흐르는 일곱 줄의 일렉트로닉 기타 같은 존재다. 그의 음계는 술, 사랑, 연민, 시, 그리고 한 컵의 슬픔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나 시는 돌아서고 헤어진 후에야 들리기 시작하며 기억을 아프게 울리는 특별함이 있다. 마치 상가수(上歌手)의 그것처럼 구슬픈 노래다. 그의 음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만 들을 수 있는데, 그를 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강정은 아무도 쓰지 않았던 시절 혼자만 썼던 <처형극장>이다. 그래서 세상에 귀한 존재다. 1996년 그의 나이 겨우 스물여섯의 일이다. 그는 너무 앞서 태어났다. 그가 가진 감각을 우리의 귀는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많이 외로웠을 테지만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독했다. 목소리는 더욱 갈라지고 허스키해졌고 노래하는 모든 것이 슬퍼졌다.

강정은 오로지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그의 말과 노래는 언제나 모던한 도시 한복판에 있었으나 그것에 실린 정서나 감정은 더 먼 곳에 있었다. 부산이나 남해의 햇빛 속에 그런 것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모양새는 세련됐으나 속은 이름처럼 ‘정(情)’으로 가득해 촌스럽다고 여기는 이도 종종 있었다. 그가 관계나 약속에서 거절을 잘 못하는 건 많은 곳에 출몰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2. 강정은 맛좋은 술이다. 향기로워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들지만 숙취가 심한 술이다. 지금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에 흥겹지만, 다음 날 고통이 심한 여운을 가진 마음의 술이다. 그것은 때때로 감염됐다 쉽게 해방되는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상일 때도 있고, 시간이 오래 흘러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일 때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잊고 또 취한다.

강정은 기대 없이 마셨을 때 의외의 맛을 간직한 하루 지난 식어버린 시큼한 커피다. 식어버린 커피는 따뜻했을 때의 씁쓸함이 무뎌지며 신맛이 도드라진다. 의외로 식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맛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좋은 맛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향기가 사라졌지만 독특한 맛으로 남은 커피다.

3. 강정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대개 터무니없는 욕이나 오해를 일컫기도 한다. 많은 오해와 소문이 손톱 끝에 따라붙곤 했지만 사실인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굳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한 적도 없고, 그는 그저 침묵했다. 참기 힘들 때면 드문 경우였지만 강정은 모든 감정과 기억에 덧칠할 수 있는 검정 매니큐어를 손톱에 발랐다.

4. 강정은 책상이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뭔가를 쓰거나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상 앞에 앉았다가 사라졌다. 턱을 괴고 먼 곳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고, 엎드려 잠을 자고 간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그곳에 앉아 한참을 울다 가기도 했다. 책상은 누구든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책상은 앞에 앉은 이들에게 성실했다.

5. 강정은 책이다. 익숙해지거나 버릇들이면 떼기 힘든 치명적인 산문 같은 <나쁜 취향>의 책이다. 주된 내용은 <키스>가 사랑의 감정만으로 연인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대립된 고독, 개인, 외로움과 그리움이 스스로 하는 자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정이라는 책은 과녁을 빗나갈 수밖에 없는, 의도한 곳과 가장 먼 곳으로 날아가 의외의 것에 적중하는 왼쪽으로 휜 <활>과 같다. 강정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특별함을 갖게 되는 일이다.

6. 강정은 슬플 때 짓게 되는 웃음이다. 그것은 너무 진지하고 감정적이어서 한 명도 웃기지 못하는 딴따라의 개그 같은 것을 볼 때 나오는 안쓰러움 같은 것이다. 때로 관객 없는 무대에 홀로 서서 독백하는 배우의 씁쓸한 것일 때도 있다. 밤하늘 달 언저리에 둥그렇게 낀 구름 같은 허연 테의 <달무리>를 보고, 다음 날 그것이 비를 몰고 올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매번 달라지곤 하는 기상예보를 기억해냈을 때 짓게 되는 미소다. 어제와 다른 오늘 같지만 똑같은 일상을 알아차렸을 때의 쓴웃음이다.

7. 강정은 때로 감정 없는 형태소다.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없다고 하더라도 수식어가 많아서 문맥 파악이 힘든 문장 같은 것이다. 눈을 가까이 대도 절대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고 윤곽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반투명 유리 같은 것. 누구나 좋아하지만 진짜 얼굴은 한 번도 들키지 않은 경험 많은 광대다.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문장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진 형태소다.



관련 표현:

1. 강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글쟁이다. 강정은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일 많이 하는 게으름뱅이다. 강정은 오래도록 함께여도 결국 혼자인 시간이다. 강정은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된 단골집, 그러다가 문득 찾아가도 언제나 그곳에 있는 술집이다. 강정은 조용필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슬픈 조용필이다. 강정은 사라진 사람들의 새벽이 없는 밤이다. 강정은 화려한 밤을 뒤로 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거리, 아무도 없는 새벽이다.

2. 강정은 방안에서 이불 깔고 벌이는 샅바 없는 씨름이다.(부연: 구기동 집 거실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인 장석남과 그는 실제로 씨름을 했다. 동생과 나는 둘 중에 하나가 넘어질 곳을 예측해서 쓰러질 물건들을 막아야 하는 난감함을 경험했다. 그런 난감함을 일컫는 명사.) 강정은 언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항상 잘생긴 백가흠이다.(부연: 내 얼굴을 보고 자기와 같은 증세라며 병원에 가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잠 못 자서 아침에만 성질 부리는 부은 눈이 비슷하다.)

3. 강정은 어떤 장르로도 변주 가능한 악보이다.(부연: 어디에 두어도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그는 어느 자리에건 잘 어울린다.)

4. 강정은 북한산을 오르며 보았던 풍경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내려와서 먹었던 두부다.(부연: 시각보다는 미각이 섬세하다. 실제로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꼭 다시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부정표현:

1. 강정은 소설가 손홍규가 놀려먹는 깨강정이 아니다. 강정은 지랄 같은 백가흠이 아니다. 강정은 알고 보면 흔하고 흔한 남자시인사람 한량이 아니다.

▲ 시인 강정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지만 이사를 자주 다녔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1년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키스> <활>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루트와 코드> <나쁜 취향> <콤마, 씨> 등이 있다. 2010년 미술작가 허남준과 밴드 ‘THE ASK’를 결성해 활동했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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