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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함민복

오선민 2016. 6. 7. 08:38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함민복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柱聯)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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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2003년 남대문시장에서 부인복매장을 운영하던 42세 여성이 회현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원단을 끊으러 가던 길이었다. 전동차가 역내로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그녀는 전동차를 타기위해 앞으로 서너 걸음 발길을 옮겼다. 그 순간 뒤에서 비틀거리던 한 노숙자가 그녀의 등을 거칠게 밀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로 위에 떨어진 그녀를 열차가 덮쳤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종로 3가역 지하철 경찰대의 형사로 재직 중이던 그녀의 남편은 어이없는 참사에 억장이 무너지고 넋을 잃었다. 장례를 치루고 정신을 차린 뒤 억울하게 먼저 간 아내를 위해 경찰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울메트로에 '더 이상 억울한 인명 피해가 없도록 스크린 도어를 설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는 등 여러 경로에 이를 호소했다. 그것이 통해 2008년에 시작하여 2009년 말에는 서울지하철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의 설치가 완료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울시는 시가 흐르는 서울이란 슬로건으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를 주련(柱聯)’처럼 내다 걸었다.


  강화 촌사람인 시인이 모처럼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스크린 도어의 시들을 보고 조금 민망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계의 강자,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시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그걸 보았더라면 기절초풍했을지도 모르겠다. “G20의 의장국으로 뛰어오른/ 대한민국은 더 높은 하늘처럼 희망차다/ 떠올라라, 아침 해처럼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모두 너를 쳐다본다, 동북아의 가난한 나라였던 너/ 이젠 세계1등의 기술국으로 올라// 빼어난 솜씨를 자랑한다/ 양궁도 골드만 맞추는 신궁이다/ 그뿐이랴, 골프도 홀인원이다/ 나가자 나가, 세계의 강국으로/ 서울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도읍이다” 1955년 지방 모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국문협 소속 모 원로시인의 작품전문이다.


  서울시는 시가 흐르는 서울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서울이 품격 있는 문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했으며, 시인들은 시민들이 시를 읽으면서 기쁨과 위안을 얻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은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으로 이 사업을 반겼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대체로 시민들의 호응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런 시들을 보며 조롱하는 시민들은 시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작품의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접한 시민들이 를 읽고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상상하면 털이 서고 낯이 뜨거워진다. 곳곳에 도사린 독버섯 같은 관피아가 온갖 사고를 다 치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한 반어법으로 이 시를 읽는다면 몰라도.


  전철 안에는 나란히 앉아 청진기를 끼고 시대의 총아 스마트폰을 조물거리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그러나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지면 불안 초조해져서 그들 스스로 의사가 아니라 환자 신세다. 전원이 꺼질까봐 전전긍긍 배터리의 노예가 되어간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수평적 사고의 평준화로 그 깊이를 더해갈 뿐이다. 지하철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일도 없지만 어쩌다가 5초 이상 눈길이 머물면 무뢰한이 되기 십상이다. 누구는 스크린도어가 없어서 죽었고 다른 누구는 스크린도어 때문에 죽었다. 이래저래 스크린도어를 생각하면 소름 돋는 대한민국이다.




권순진


 

Whispering Shadows - Hassan Ayub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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