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최은묵의 「라면찌개김치사리」감상 / 이홍섭, 휘민, 오민석 본문

시 비평

[스크랩] 최은묵의 「라면찌개김치사리」감상 / 이홍섭, 휘민, 오민석

오선민 2016. 6. 7. 11:17

최은묵의 「라면찌개김치사리」감상 / 이홍섭, 휘민, 오민석

 

 

라면찌개김치사리

 

  최은묵(1967~ )

 

 

 

메뉴를 바꿨죠, 빈 플랫폼으로 강물을 끌어오듯 냄비를 탐색할래요

 

목욕물을 데워줘요 면발 약한 기차는 어떻게 삶나요

 

발가락에 낀 반지로 육수를 내고 헌법을 갈아 스프를 만들어요 우리의 이빨은 도덕적인 밤보다 튼튼하니

 

쫄깃한 연애는 비법이죠

 

검정 세단이나 푸른 트럭이나 똑같이 둥근 밤, 싱거운 막차를 보내고

 

허겁지겁 밤길을 꼬아 라면을 끓여요

 

도발적으로 찢은 김치를 추가할게요 한 끼만 먹고 떠난 종이비행기는 잊고

 

콧등에 얼큰한 땀 맺히도록 젓가락을 돌려요

 

순서를 뒤엎어도 뜨거움은 엉켜있죠

 

찬밥 한 덩이 가져올까요?

 

 

..........................................................................................................................................................................................

 

   참 시가 어렵다. 평자의 입장에서는 시가 어려우면 할 말이 별로 없다.

   되풀이해 읽어도 이 작품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현란한 비유들이 어떤 것에 관한 비유인지를 잘 모르겠다. '라면찌개김치사리'는 '라면사리김치찌개'의 순서를 바꿔놓은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왜 바꿔놓았는지, 바꿔놓을 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지가 시의 내용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을 견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잡히지 않는다. 일단 해석 불가능이니 소통은 만무하다. 

 

  이홍섭 (시인)

 

 

   이 시는 우선 제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리는 전골이나 찌개 같은 메인 요리에 곁들이는 부재료인데 시인은 요리의 주체와 객체를 바꿈으로써 발랄한 뒤집기를 시도합니다. 그래서 '김치찌개라면사리'가 아니라 '라면찌개김치사리'가 된 것이지요. 이 시의 제목은 다분히 의도적인 포석으로 다가옵니다.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열쇠말이기도 하고요. "메뉴를 바꿨죠. 빈 플랫폼으로 강물을 끌어오듯 냄비를 탐색할래요"라는 첫 연은 감각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다음 연들은 라면에 김치를 넣어 끓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시적 화자는 라면을 끓이는 평범한 행위에 지리멸렬한 일상성을 겹쳐놓고 있습니다. 화자가 냄비 속에 넣은 것들은 "발가락에 낀 반지"로 우려낸 육수와 "헌법"을 갈아 만든 스프입니다. '반지'와 '법'은 화자의 결혼 생활을 암시하는 것일 테고요. 이제 화자에게 필요한 것은 "쫄깃한 연애"와도 같은 일탈의 비법입니다. 그건 "싱거운" 일상을 살아가는 화자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올 무엇일 테고요.

   그러나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를 넣든 라면에 김치사리를 넣든, 어차피 냄비 안에서 뒤섞이면 그 맛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순서를 뒤엎어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견고한 일상의 성채가 쉽사리 무너질 리 없으니까요. 우리 삶의 비극이 여기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제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춧가루의 힘을 빌려 잠시 "콧등에 얼큰한 땀"을 흘려보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매운 맛은 혀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닙니다. 피부가 느끼는 통증일 따름입니다. "도발적으로 찢은 김치를 추가"한 덕분에 화자는 잠깐 뜨거워집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조차도 화자는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찬밥 한 덩이"로 뜨거움을 가라앉히며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래보는 것입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일상 비틀기를 통해 잘 형상화한 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감 이상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의 속내를 너무 많이 감추고 있는 듯합니다. 화자가 왜 이렇게 홀로 뜨거워졌다가 식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고도 독자인 저로서는 화자와 함께 뜨거워질 수 없었습니다. "헌법을 갈아 스프를 만"드는 상상은 흥미로웠지만 좀 과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발적으로 찢은 김치"라는 표현도 이미지를 환기할 수 있는 묘사로 대체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휘민 (시인)

 

 

   일반적인 독자라면 ‘라면찌개김치사리’라는 제목부터 난감할 것이다. 네 가지 음식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난해성을 전경화(前景化)시키고 있다. 그 의도는 의외로 간단하다. 세계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하지 않은 세계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은 왜곡이거나 오역(誤譯)이다. “면발 약한 기차를 어떻게 삶”으며, “반지로 육수를 내고 헌법을 갈아 수프”를 만든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손쉬운 해법을 구하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파편화된 세계에 파편화된 이미지의 그물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이제 당신, 독자의 몫이다. 단일하고도 고정된 의미는 없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