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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오선민 2016. 6. 7. 08:43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가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시집『세워진 사람』(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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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간신문 사회면 기사가 차려진 아침 식탁. 참혹함에 밥알이 씹히지 않고 가슴이 짓눌린다. ‘지독한 죽음의 참상은 비극적 실존의 극단이다. 일련의 어이없고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잔인한 죽음들을 일상으로 대하면서 생의 어두운 그림자에 진저리치며 전율한다. 기도가 막혀 죽어가는 아내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중늙은이의 참담함, 그저 눈물만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비통함이 가슴을 도려낸다. 이런 것이 피폐한 삶의 마지막 풍경이라면 우리의 생은 너무나 비루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루세끼 밥 먹고 배를 문지르고 트림하면서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멀리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를 우아하게 바라보며 느긋해하는 따위들이 죄다 가증스러워진다. 시간이 가면 필연적으로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내일의 어느 날알아서 끌려갔다남의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이런 비극적 고독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쓸쓸한 노후를 외로이 살다가 아무도 없는 봉쇄된 방에서 최후를 맞을지도 모르는 게 미래의 우리 삶이다. 이 그늘을 피해간다는 장담을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지난 주 죽음을 동반한 온갖 이상한 사건 사고들의 더미 가운데서 2단짜리 부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남이자 이희호 여사의 막냇동생인 이성호 전 워싱턴DC 한인회장이 광화문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는 기사였다. 시신은 오피스텔을 방문한 지인에 의해 숨진 지 닷새쯤 지나 발견됐다. 그는 김대중정부 시절에 권력 실세로 통했다. 하지만 마지막 길에는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던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가족이나 친구마저 곁에 없었다. 배달된 조간신문만 집 앞에 쌓였을 뿐이었다.


 오래전 워싱턴에서 여행사를 경영했던 그는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 2명도 미국에 거주한 탓에 쓸쓸한 말년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고독사가 가슴을 후비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독사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것을 말한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 누구든 여차저차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작은애가 제 살림 차려서 나가면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될 처지다.


 어느 순간 눈물 머금은 신()이 나를우두커니 바라볼지도 모를 노릇이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고, ‘오발탄이후에도 신은 어디에 있느냐며 숱하게 부르짖었지만 우리의 생에서 저렇게 아우슈비츠는 지어졌다가 또 허물어지기를 반복했다. 눈물 머금은 채 그저 바라만 보는 신이라도 있기는 할 걸까. 어쩌면 신에게는 수풀 속에서 발길에 툭 차이는 작은 새의 죽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라 그러면 너희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장수하리라는 말씀도 나오긴 나온다. ‘김노인네 작은 방 어딘가에 조그만 가족사진이 하나 놓여있었을까.

 

권순진


 

Farewell To Tarwathie - Damian Luca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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