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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담배 피우는 남자/ 김선굉

오선민 2016. 6. 7. 08:41

 

 

담배 피우는 남자/ 김선굉

 

그의 오른손은 이따금씩 왼쪽 가슴 부위를 더듬어

희고 갸름한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 끝에 불을 붙인다

마음이여, 여위었으나 원래 뜨거웠구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고요히 타오르며

마음은 이윽고 몸의 일부가 된다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지는

인화성이 강한 木炭의 몸이 타고 있다

 

- 시집『밖을 내다보는 남자』(전망,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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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금녀 시인은 ‘60년대 식이라고 전제하며 아직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깊이가 있어보인다고 했다. 시인의 말대로 한때는 그랬다. 하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허공에다 회백색 연기를 천천히 피워 올리며 뭔가 고뇌하는 듯한 모습이 남자의 매력으로 보였던 때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담배의 해악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끽연가는 거의 맥을 못 추고 있는 형국이다.

 

  서강대 총장 시절 박홍 신부는 담배를 정신적 비타민이라고 치켜세우며 담배의 정신적 품격을 들먹였고, 세수할 때조차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아 양손에 번갈아가며 담배를 즐기고서도 건강하게 오래 살다간 공초 오상순 시인은 흡연 문학인에겐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담배를 즐겼던 그 많은 신부님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어쩌다 담배 피우는 신부님을 뵈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때 문인의 전매특허처럼 인식될 정도로 애연가 아닌 문학인은 드물었지만, 하나둘씩 금연을 선언해 지금은 담배피우는 문인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애연가로 알려진 김선굉 시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희고 갸름한마음으로 심장에다 불을 지피며 경건한 제의를 치르듯 비장하다. 마음몸의 일부가 되어 행로마다 심장의 파편으로 버려져 쌓인다.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다시 그 마음에 불을 붙이는 걸 보면 금연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에게 어떤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도 금연을 했다든가 담배를 줄였다든가 하는 소식이 들리고, 도무지 담배를 끊고서는 살아지지 않을 것 같다던 문인수 시인도 담배를 멀리한 지 1년 쯤 된다. 사람이 담배를 발견한 16세기 이래, 특히 흡연의 습관이 확산되었던 18세기 이후 인류의 문화예술적 자산과 과학적 성과가 어느 때 보다 눈부셨다면 억지 주장일까. 과연 지금의 분위기처럼 담배는 백해무익하기만 한 걸까. 임어당은 그의 생활의 발견에서 끽연이 도덕적 약점이란 점을 인정했지만, ‘담배는 명상적이며 사려 깊으며 상냥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미약하나마 집중력과 기억을 향상시키기도 하고, 베타엔돌핀을 증가시켜 고통과 불안감을 감소시킨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만 되면 분향소에는 유독 담배 조문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날 그 시간 한 까치 피우면서 다시금 복잡한 감정을 가라앉혔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리라. 

 

  꼭 그런 의미가 아니라도 애잔한 위로의 담배 인심일 것이다. 재임 중 격의 없이 장관들과 맞담배를 했었고, 퇴임 후 동네 구멍가게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 등은 그의 얽매이지 않은 사유와 더불어 그가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오래도록 바보 노무현의 인간미로 기억될 것이다. 짧은 방한 일정에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들을 불러 만찬을 가진 반기문 씨와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이미지다. 오늘은 '세계 금연의 날'이라고 한다. 5월을 보내면서 노무현을 다시금 추억하노니 끊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권순진 


 

저녁놀(박경규 작곡) - Roman De Mareu Orchestra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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