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아이러니의 시 `이불` /강인한시인의 해설 본문

좋은 시 감상

[스크랩] 아이러니의 시 `이불` /강인한시인의 해설

오선민 2010. 5. 13. 07:38

아이러니의 시 '이불' /강인한



이불(二不)

박남희



나는 밤마다 침대 위에서
아내와 함께 이불을 덮고 잔다
나는 때때로 이불이 귀찮아서
걷어찰 때도 있지만
날씨가 추울 때 아내는
이불을 혼자 끌어다 덮는다
그럴 때 나는 허공을 휘젓다가
붙잡히는 것 아무거냐
가령 노자(老子)의 도(道)와 같이
휘저어도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을
대충 덮고 잔다
그리고 감기에 걸린다

--------------
박남희 시인은 이름으로 보아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군요.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입니다.
이 시는 우리 삶의 단편에서 아이러니(반어 反語)를 포착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듯하지만 무의식중에 따로따로 자고 있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의 '이불'의 발음에서 '二不'이라는 조어가 연상된 모양입니다.
본래 '不二'라는 말이 있지요. '둘이 아니다, 둘도 없다' 즉 '하나밖에 없다, 유일하다'라는 뜻의 어휘가 '불이(不二)'입니다. 시인은 그런 사고의 연속성 끝에 덮고 자는 이불로부터 아이러니의 어법으로 '不二'를 만난 모양입니다. 일종의 말장난, 언어 유희인 셈입니다.
말장난의 재미 못지 않게 이 시의 맛은 끝마무리에 있습니다. 내내 평상적인 어조를 쓰다가 형이상학적인 노자의 도를 운운하고 나서는 어조를 바꾸어 갑자기 엉뚱한 고백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감기에 걸린다"라는 것. 하하하, 웃음이 나옵니다. 바로 클라이맥스의 반대 기법인 베이소스(돈강법)를 멋지게 구사한 것이지요. 시란 이런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하기도 합니다. <강인한>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서봉교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