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2010 명시선 / 나희덕 본문
나희덕
야생사과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 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 따주었다
새가 쪼아먹은 자리마다
까만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지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누군가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 물었을 뿐인데
-『현대문학』2008. 2월호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윤종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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