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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강인한의 「브릭스달의 빙하」감상 / 조정인

오선민 2011. 6. 21. 21:56

강인한의 「브릭스달의 빙하」감상 / 조정인

 

 

브릭스달의 빙하

 

   강인한

 

 

설레는 오로라 때문일까요,

잠이 오지 않아요.

빙하를 보았지요. 푸른빛이 눈을 찔러요.

브릭스달의 빙하, 저 높은 이마를 가진 빙하도

이제 많이 늙었어요.

눈꺼풀이 무겁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요.

내 나이 열일곱에 만난 당신

그때 만난 당신은 늠름한 청년이었지요.

이제 나도 마흔을 넘겼어요,

빙하의 푸른빛이 온통 내 눈으로 흘러드나 봐요.

어젯밤 우리들의 딸이

저희 반 남학생이랑 함께 지낸 걸 알아요.

빙하가 우레처럼 울고 난 뒤

피오르드로 한꺼번에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

단숨에 벌어지고 쪼개지는 그게 우리네 삶인 걸요.

오늘 새벽 그 사내애를 만났어요. 화가 나서

따귀를 때리고 싶었지만, 당신의 서늘한 눈빛이 생각났어요.

저 빙하의 푸른빛이 산골짜기마다 넘쳐요.

이렇게 많은 푸른빛에 싸여서

나는 언젠가 눈이 멀 거예요.

당신이랑 작은 보트를 빌려 타고

피오르드에서 송어를 낚던 지난여름이 생각나요.

흥정도 없고 덤도 없는 세상.

이제 알아요. 나는 푸른빛에 둘러싸여서

머지않아 눈이 멀 거예요.

아름다운 브릭스달의 빙하도 언젠가는 폭포로

폭포 아래의 호수로 모두 다 풀어질 거예요.

내일 아침엔 노란 튤립 화분을 주방 창틀에 내놓겠어요.

아픔 반 기쁨 반, 딸애도 알게 되겠지요.

해가 없는 여섯 달, 해가 지지 않는 여섯 달

아이들은 알게 될 거예요.

블루베리는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월귤 열매는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열린시학》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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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의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읽고 난 뒤의, 소설이 지닌 아우라에 싸여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끝내 눈물 한 방울이 핑 도는 것 같은 시.

   시에 담겨있는 소설적 서사에는 어머니와 딸애의 사랑과 삶의 이중적 통과의례가 있다. 딸아이는 언젠가 알게 될 테지. 이 삶이 해가 없는 여섯 달, 해가 지지 않는 여섯 달처럼 기쁨 반, 아픔 반이란 걸. 피오르드로 한꺼번에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처럼 단숨에 벌어지고 쪼개지는 그게 우리네 삶인 걸.

   그러한 삶을 에둘러 싸고 있는 것은 이마가 높은 브릭스달 빙하의 푸른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의 힘이다. 그러므로 자, 내일은 우리네 삶을 향한 축하카드를 내어걸자. 주방 창틀에 노랑 튤립 화분을 내어 놓는 것으로.

 

 

조정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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