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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박성우, 「소금창고」감상 / 김선우

오선민 2011. 10. 24. 18:03

박성우, 「소금창고」감상 / 김선우

 

소금창고

                                        박성우

 

  

그녀는 소금창고를 가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소금덩이들이 무더기로 부려져 있다

 

소금창고를 물려받던 열댓 살 무렵

소금 저장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소금을

어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소금물은 그렁그렁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나던 이십여년 전

무심코 열어본 소금창고에서는

짜디짠 소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여간 닫히지 않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녀의 눈 속에는 소금창고가 있다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창고 안에는

넘실넘실 녹아나가는 소금물을

꾹꾹 눌러 말린 소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렇고 검게 그을린 소금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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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우 -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거미」가 당선되었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미역」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청소년시집 『난 빨강』이 있음.

◆ 출전_ 『가뜬한 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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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다’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짠하다는 말이 왠지 짜디짠 소금창고로부터 왔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누구일까.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난 것이 이십년 전이라 하니, 그녀는 나이든 늙은 여인일 터. 시인의 어머니이기 쉽겠으나 꼭 그렇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모나 숙모 같은 친척 여인일 수도 있고 고향 마을의 늙은 여인일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엔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소금창고를 가진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계신가요. 삶의 풍파 속에 고단한 소금창고를 가지게 된 그 모든 얼굴들이 바로 내 어머니이기도 하고 당신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이 시인의 시들은 대개 시인의 모습 그대로 수줍고 수수합니다.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소박하고도 적절하게 유지합니다. 비애가 있지만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소금창고와 한 여인의 삶이 교차합니다. 이 교차점에서 생기는 짠한 울림은 시인의 따듯한 배려로부터 오는 것일 터. 독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창고로 형상화된 ‘그녀’에 대한 배려 말입니다. 문득, 어머니 그립습니다.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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