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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벚꽃 여자/ 손순미

오선민 2017. 4. 20. 09:32




벚꽃 여자/ 손순미



한 토막 평상에

엉덩이를 찍고 앉은 김씨

아코디언을 켠다

김씨의 세월이 그곳으로 다 몰려간 듯

아코디언은 주름진 몸을 펼쳤다 접었다

줄까 말까 배배 꼬는 여자처럼

풍만한 비애의 소리를 꺾어가는 중이다

 

봄이라는 게 처음부터 가려고 온 거지

! 소주처럼 차고 뜨거운 저 벚꽃 아래

한번쯤 강제로 눕혀보는 추억 같은 것!

 

벚꽃이 지려고 벚꽃이 피고

여자가 가려고 여자가 오고

당최 벚꽃이란 게 여자란 게

 

벚꽃은 잠깐 태어나 오래 죽어

아름다움을 괴롭히고 슬픔을 누리다 가고

아코디언 저 혼자 밤을 건너가는 소리

! 오늘 벚꽃이 저리 분분하게 피어

어쩐지 그동안 지은 죄 탈탈 털어놓고 싶어

오지랖 떨어보지만

 

더럽게 깨끗한 척하는 저 벚꽃이란 여자

한꺼번에 그 색 다 써버려

허탈한 저 여자

너무 쉬운 저 여자

너무 뜨거운 저 여자



- 월간 유심20147월호

............................................

 

 환하게 만발한 벚꽃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화사하게 한다. 집나오면 개고생인줄 알면서 사람들이 벚꽃단지로 몰려드는 이유다. 봄바람 부는 날 울울한 벚꽃 길을 걷노라면 눈이 내린 듯 하늘에서 튀밥이라도 튀겨낸 듯 이 꽃대궐이 천국인 양 감각도 착오를 일으킨다. 그러다 궂은비라도 한바탕 휘몰아치면 그 연약한 것이 한꺼번에 폭설처럼 날려 바닥은 젖은 꽃잎으로 점묘화를 그린다. 화무십일홍, 말 그대로 고작 열흘도 버티지 못하고 추풍낙엽이다. 범람하는 영혼의 향기도 폭삭 주저앉아버린다.


  어제는 화창하다 못해 초여름 날씨처럼 덥더니만 오늘은 봄비에 쌀쌀한 기운마저 감돈다. 이지러지는 봄을 온몸으로 느낀다. ‘봄이라는 게 처음부터 가려고 온 거지하지만 벚꽃이 져도 꽃은 새롭게 핀다. 봄엔 벚꽃만 피는 건 아니다. 그토록 많은 꽃이 피고 지는데 벚꽃 하나가 진다고 봄이 끝날 리는 없다. 우리의 봄에는 아직 펴야할 꽃이 많이 남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눈앞에서 낙하하는 꽃잎을 보면 서러워진다. 벚꽃처럼 흩어지는 사람과 벚꽃처럼 흩날리는 시간들과 벚꽃처럼 하염없는 기억들이 스친다

 

  시인은 차고 뜨거운벚꽃이라고 했다. 시인은 <벚꽃 십리>에서 희고 차가운 벚꽃의 불길이라고도 했다. ‘내가 얼마나 어두운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피었다환한 벚꽃의 어둠, 벚꽃의 독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내가 얼마나 불온한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진다고 하였다. ‘더럽게 깨끗한 척하는 저 벚꽃이란 여자’ ‘한꺼번에 그 색 다 써버려 허탈한 저 여자’ ‘너무 쉬운 저 여자’ ‘너무 뜨거운 저 여자그 조루성의 경망스러움 때문에 군자들에겐 외면당했고 조선에서는 칭송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 강렬한 뜨거움으로 인해 천시되었던 벚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뜨겁고 불온한 나로서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황지우 시인도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라고 벚꽃세상을 꾸밈없이 소망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딴 세상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생이 그렇듯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가을의 음색을 가진 아코디언 선율이 곁들여진다면 지는 봄날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 잘 지나가고 있는 이 봄이 고맙다.



권순진

Elgar - Salut D'amour (사랑의 인사)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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