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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하심 / 곽도경

오선민 2013. 8. 22. 08:38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하심下心

 

 

곽도경

 

 

 

 

소리길을 걷는다.

숲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이

온통 소란하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시끄러운 것들이 새삼 다정하다.

 

 

시끄럽고, 다정한 것들의 손을 잡고

다시 길을 걷는다.

나뭇가지 하나 길 밖으로 튀어나와

허공에 길게 누워 있다.

 

 

마음에 날을 세운 사람들이

하나 둘 머리 조아리고 지나간다.

도도하고 꼿꼿하던 마음이

나뭇가지에 걸려 비로소 겸손하다.

 

 

머리 숙이고 지나가야만

볼 수 있는 환한 풍경 앞에서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내려놓고

나는 그저 한 점보다 작다.

 

 

 

 

 

-출처 : 『詩하늘』(2012. 겨울)

-사진 : 詩하늘 이온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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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길은 가야산 둘레길의 일부다

생긴 지 오래 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다녀오는 길이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해인사로 접근하는 길목에서

꼿꼿한 마음 내려놓지 않고는

세상에 제대로 발원하고 있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거기 소리길에 가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외에

내 속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

거기서 나의 업을 반성하지 못하면 가나마나다

무엇 하러 산문 가까이 가서 발품을 했는지

느끼고 와야 한다

산에 가면 낮게 벋은 가지들이 많다

살피지 않고 가다가는 걸리게 되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게 다 무엇이겠는가

낮추라는 게다, 아래로 보라는 게다

하심下心, 또 하심下心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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