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낙타의 생 / 류시화 본문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낙타의 생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보고서야
무릎 기도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출처 :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숲, 2013)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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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자신과 낙타를 동일시한다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모습에서 자신을 읽어내는 것
우리 사는 세상이 사막과 다를 게 무언가
고독과 그리움
사건의 돌출과 기상이변
쨍쨍 내리쬐는 햇살과 모래 폭풍
독을 가진 것들의 겁습과 밤의 냉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사는 세상의 일들과 다른 게 없다
이것들을 이겨내고 사막을 건너는 일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
우리는 기어이 살아내야 한다
등에 난 혹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
옹이처럼 변한 무릎
자꾸 넘어지는 다리
아득한 마음의 벼랑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
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흔들리며
세상을 건너는 일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강건해야 하리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