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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난은 / 천상병 본문

좋은 시 감상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선민 2017. 6. 1. 10:42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대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데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러  

 

 

천상병 시선 『주막에서』,《민음사》에서

 

30여 년 전에는 위 어른이나 선생님을 찾아뵐 때 술이나 담배를 사들고 찾아가는 게 예의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술과 담배 같은 것은 건강에 해롭다고 주지 않는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에서 가난은 그의 재산처럼 나온다. 커피 한 잔과 해장을 하고 돌아갈 버스비가 그의 전부였지만, 그것이 부족함 없는 행복이고 서글픔이라 생각한다. 햇빛을 바라보는 일에도 예금통장이 있느냐 묻는다. 생각해보면 햇빛을 바라보는 예금통장은 건강한 몸이 예금통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 몸도 세월 그 자체를 무한정 이겨내지는 못한다. 아들딸들이 와서 무덤가에 앉아 아비의 삶을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씽씽 바람 불어 가는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아침은 행복하다고 여기고 싶다. 시를 읽고 시를 읽게 하는 하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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