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 비평 (169)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다산(茶山)과 보낸 하루는/ 윤성학 검소하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능내역에서, 빛나는 강의 비늘들을 바라보며 딱 시장기만큼만 뜸하게 오는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강물을 떠다 흙을 갰는지 정갈하게 빚은 역사의 기왓장마다 옅은 민물 비린내가 번져왔습니다 다산이 나고 죽은 여유당 햇..
전봇대와 고양이의 마을/ 김언 아침마다 썩는 냄새가 푹푹 쌓이는 마을, 이 마을 정중앙엔 커다란 전봇대가 하나 서 있다 사람들은 이 전봇대를 중심으로 밤새 쓰레기를 쌓아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날이 밝으면 전봇대 꼭대기에서 도둑고양이들이 내려와 쓰레기더미를 뒤진다 꼬리를 잔..
신문보는 남자/ 전윤호 위성도시로 가는 전철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내일자 조간을 읽는 남자 반을 접어도 옆사람과 부딪치는 정치면을 두 번 읽는 남자 아파트 분양공고 위에 땀방울을 떨구는 남자 최고 발행부수의 권위를 신뢰하고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남자 선..
비둘기에게 버스운전을 맡기지 마세요*/ 이은림 올해는 봄도 길고 겨울은 더 길었군 흘러가는 강물도 한없이 길지 내 귓속에서 포클레인들이 떠들어대는 것 같아 세면대를 채우는 것이 흙탕물은 분명 아닌데 아침마다 한참동안 수돗물을 흘러 보내며 조간신문을 읽네 투표소의 줄도 길..
☛ 경상매일/ 2015.6.10 (수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사람의 바다 이 경 . . 어떤 돈을 맡아보면 확 비린내가 난다 . 비 오는 날 우산도 사치가 되는 시장 바닥에서 썩어 나가는 고등어 내장 긁어낸 손으로 덥석 받아 쥔 천 원짜리 . 날비에 젖고 갯비린내에 젖고 콧물 눈물 땀에 젖..
남몰래 오줌을 누는 밤/ 안명옥 놀라워라,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간다 참지 못할 만큼 오줌이 마려워 걸음이 평소보다 급하다 오줌 마려운 것이, 나를 이렇게 집 쪽으로 다급하게 몰고 가는 힘이라니! 오줌이 마렵지 않았다면 밤 풍경을 어루만지며 낮엔 느낄 수 없..
나의 시를 말한다 | 박준 <한겨레>2016.01.30 당신에게서 -태백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여름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당신에게 적은 ..
노태맹의 「유리(&#32657;里)에 가면」감상 / 허연 유리(&#32657;里)에 가면 노태맹 그대 유리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지 먼지처럼 가볍게 만나 부서지는 햇살처럼 살자던 그대의 소식 다시 오지 않고 유리에 가면 그대 만날 수 있을까, 봄이 오는 창가에 앉아 오늘은 대나무 쪼개어 그대 ..
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 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巖) 같은 절에 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