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 비평 (169)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시인공화국 풍경들] 鄭華鎭의『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 한국일보 | 객원논설위원 고종석 aromachi@hk.co.kr | 입력 2005.09.13. 17:50 징거미 더듬이 정화진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는 나를 붙드는 소리 계단 입구 놀이터 쇠 그넷줄이 밤바람에 찍찍거린다 삽시간, 5층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
마종기의 「가을 수력학(水力學)」감상 / 문정희 가을 수력학(水力學) 마종기 그냥 흐르기로 했어. 편해지기로 했어. 눈총도 엽총도 없이 나이나 죽이고 반쯤은 썩기도 하면서 꿈꾸는 자의 발걸음처럼 가볍게. 목에서도 힘을 빼고 심장에서도 힘을 빼고 먹이 찾아 헤매는 들짐승이 되거나 ..
최은묵의 「라면찌개김치사리」감상 / 이홍섭, 휘민, 오민석 라면찌개김치사리 최은묵(1967~ ) 메뉴를 바꿨죠, 빈 플랫폼으로 강물을 끌어오듯 냄비를 탐색할래요 목욕물을 데워줘요 면발 약한 기차는 어떻게 삶나요 발가락에 낀 반지로 육수를 내고 헌법을 갈아 스프를 만들어요 우리의 ..
잊고 살기로 하면야/ 나해철 잊고 살기로 하면야 까맣게 잊을 수도 있는데 불현듯 가슴에 불쑥 나타나 화들짝 놀라게 하는 건 아프게 하는 건 날보고 그래 짐승처럼 살지 말고 사람으로 살라는 걸거야 가끔은 생각하며 살아야지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했던 일들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가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
담배 피우는 남자/ 김선굉 그의 오른손은 이따금씩 왼쪽 가슴 부위를 더듬어 희고 갸름한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 끝에 불을 붙인다 마음이여, 여위었으나 원래 뜨거웠구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고요히 타오르며 마음은 이윽고 몸의 일부가 된다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지는 인화성이 강..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함민복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柱聯)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
빈 산. 3 이 영 춘 큰 산에 이르러 노송 한 그루 볼 수 없어 눈 감고 앉아 노송을 본다 먼 산등성에 누워 있던 와불 한 존尊 눈 뜨고 일어나 성큼 성큼 산문을 연다 열린 산 문 사이로 황금 구름을 타고 가는 소 한 필 곡기 끊고 누운 와불에 업혀 심우도로 가는 돌문을 연다 나는 돌문 밖에 서..
적(敵) / 마광수 해방전에 살았던 윤동주는 참 행복했겠어 그때는 적이 분명했을 테니까. 일제(日帝)가 곧 적이고 적이 쓰러지면 곧장 희망이 달성되는 걸로 돼 있었으니까. 유신 시절에 살았던 청년들도 참 행복했겠어 그때도 적은 하나요, 적이 분명했을 테니까. '군사독재'가 곧 적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