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 비평 (169)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 안성덕 산신령님 이름이 뭐죠, 부음을 접하고 달려간 산악회원의 상가 영안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린 닉넴으로 통했으니까요. 누군가 핸폰으로 산신령님의 실명을 알아냈죠. 갹출한 부의금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접수처 청년 방명록에 서명을 부..
베스트셀러 시인/ 노향림 ‘나무의 수사학’을 펴낸 손택수 시인이 한국시인협회가 주는 젊은 시인상을 받을 때 밝힌 수상 소감이다. 시집이 나오고 일주일 동안 책이 하도 잘 나가서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는 꿈을 꾸었단다. 알고 보니 그것은 순전히 가짜였다고, 어머니가 아들 자랑을 ..
베껴먹다/ 마경덕 어머니는 할머니를 베껴 먹었고 나는 어머니를 베껴 먹고 내 딸은 나를 베껴 먹는다. 태초에 아담도 하나님을 베껴 먹었다. 아담 갈비뼈에는 하와가 있고 내가 있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여자들은 하와의 사본이다. 금성 목성 토성 화성 ... 모두 지구의 유사품이다, 바람..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 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
사라진 것들의 목록/ 천양희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수선소집 목포댁 재봉틀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
붉은 수수밭/ 안명옥 아침마다 팬티 하나를 더 가지고 다닌 적 있었다 등 떠밀어대는 바람의 손에 밀물로 들어선 지하철 안 비릿한 바다냄새가 출렁거리고 팔 하나와 가방은 어느 아주머니 가슴 위에 수평선으로 걸려 있고 사람과 사람이 침몰 직전의 배들처럼 흔들리는 시간 청바지를 ..
난타, 소나기/ 문인수 너의 양철지붕 창고를 본 적 있다. 텅 빈 양철지붕 창고를 기억한다. 어둠 속으로 꽉 찬 양철지붕 창고, 너는 죽어 거기 걸터앉아 속 시원히 두드리고, 나는 살아 돌아눕고 돌아눕는 밤, 등/ 허리가 시원하다. -시집『그립다는 말의 긴 팔』(서정시학, 2012) ..................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