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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양팔저울 외 4편 / 함민복

오선민 2013. 9. 4. 12:05

 

양팔 저울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꽃 피는 경마장 

함민복

   

경마장으로 건너가는 애마교 입구 

비상하는 청동마상 두필 

앞발이 허공을 힘차게 딛고 있는

   

그림자 밟으며  

모든 비상의 첫발은 허공을 짚는 것이라고  

희망에 중독된 사람들 우르르 몰려간다

   

정보지를 뒤적이며   

지갑을 점검하며

걸인의 바구니에 반짝 동전을 떨구며

   

주차장 사이사이  

한 나무가 수백 나무 꿈꾸는 

고배당 노리는 벚꽃 화사하다

 

 

 

 

 

죽은 시계  

함민복

   

죽은 시계를 손목에 차고  

수은전지를 갈러 가는 길  

시계가 살아 움직일 때보다

시계가 무겁다  

시계가 살았을 땐

시간의 손목에 매달려 다녔던 것일까

시간과 같이 시계를 들고 있었던 것일까

죽은 시계를 차고 나니

마치 시간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마치 시간을 어찌할 수 있는 것처럼

  

시계가 무겁다

 

 

 

 

구름의 주차장

 함민복

   

구름의 주차장에서

구름을 기다렸네

구름은 오다

구름을 버리고 흩어졌네

눈알을 달래

눈알과 마음을 믿은 죄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어

구름이 되어가고 있네

나는

나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네

 

 

 

 

 

함민복

 

 

보름달 보면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귀 기울이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

마음의 숫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그림자 내가 만난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ㅡ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2013

 

출처 :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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