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3562)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콩나물에 대한 예의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미리 쥐어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오늘 / 박건호 어느 날 나는 낡은 편지를 발견한다 눈에 익은 글씨 사이로 낙엽 같은 세월이 떨어져 갔다 떨어져 가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세월은 차라리 가지 않는 것 모습을 남겨둔 채 사랑이 갔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추억은 한 잔의 커피를 냉각시킨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따스한 것을 저만큼의 거리에서 그대 홀로 찬비에 젖어간다 무엇이 외로운가 어차피 모든 것은 떠나고 떠남 속에서 찾아드는 또 하나의 낭만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이미 떠나버린 그대의 발자국을 따라 눈물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발견한 낡은 편지 속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듯 그대를 보게 된다 아득한 위치에서 바라다보이는 그대는 옛날보다 더욱 선명하다 그 선명한 모습에서 그대는 자꾸 달라져 간다 달라지는 것은..
위로 - 원주투데이 (wonjutoday.co.kr) 위로 - 원주투데이 www.wonjutoday.co.kr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하나 꽃피어 조병화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말라 네가 꽃피우고 나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