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 비평 (169)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감상 / 나희덕 이별의 능력 김행숙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
허수경의 「공터의 사랑」감상 / 송재학 공터의 사랑 허수경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
허연의「사선의 빛」감상 / 황인숙 사선의 빛 허 연 끊을 건 이제 연락밖에 없다. 비관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났던 문틈으로 삐져 들어왔던 그 사선의 빛처럼 사라져가는 것을 비추는 온정을 나는 찬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빛이 너무나 차가운 살기였다는 걸 알겠다. ..
실비아 플라스의 「거상(巨像)」평설 / 정끝별 거상(巨像) 실비아 플라스 저는 결코 당신을 온전히 짜 맞추진 못할 거예요, 조각조각 잇고 아교로 붙이고 올바로 끼워 맞추어. 노새 울음,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음탕한 닭 울음소리가 당신의 커다란 입술에서 새어 나와요. 그건 헛간 앞..
구석본의 「거울」감상 / 엄원태 거울 구석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
이병률의 「밑줄」감상 / 오은 밑줄 이병률 역전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여자가 합석을 했습니다 주문을 하고 눈 둘 곳 없어 신문을 가져다 들추었습니다 시킨 밥이 나란히 각자 앞에 놓이고 종업원은 동행인 줄 알았는지 반찬을 한 벌만 가..
김지녀의「여진」감상 / 송재학 여진 김지녀 수백 개의 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흘러갔던 바퀴가 다시 나를 향해 달려오나 끊어진 철로처럼 누워 나는 불안한 진동을 감지하는 바닥인가 이 순간 나는 유신론자 아니 유물론자 아니 아무 것도 아니 다만 닥닥 부딪..
윤지영의 「장래 희망」감상/ 박현수 장래 희망 윤지영 나는 나 말고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했다 나로서는 충분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문 잠긴 초록 대문 앞에 앉아 길고 아득한 골목 끝을 바라보..
김원경의 「프리사이즈(free size)」평설 / 홍일표 프리사이즈(free size) 김원경 외로워 수증기처럼 내가 희미해져갈 때 저려오는 손과 발을 꾹꾹 누르면서 나는 내 핏속 어디쯤 떠돌고 있는 당신을 자주 꺼내 입는다 당신은 어느 고대 악사가 내뿜었던 어떤 입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