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 비평 (169)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강인한 시집 『강변북로』읽기/ 하린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이따금 새들이 떼 지어 강을 물고 날다가 힘에 부치고 꽃노을에 눈이 부셔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이면 검은 강은 입을 다물..
김상미의 「연륜의 힘 」감상 / 박현수 연륜의 힘 김상미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따뜻하다 고뇌가 사랑보다 몸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는 걸까? 아님 사랑이 고뇌보다 몸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는 걸까? 꿈꾸듯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저 몸속에서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
김안의 「동지(冬蜘)」감상 / 오은 동지(冬蜘) 김 안 밤이고 밤이면 길바닥마다 거미가 집을 짓는 계절이다. 나는 쭈그려 앉아 투명한 거미집을 부순다. 양손 가득 찢겨진 거미집을 묻힌 채 얼굴을 감싸면 달이 떠오르는 소리 들린다. 타원형의 긴긴 달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아이들이 가..
이준규의 「내 마당」감상 / 오은 내 마당 이준규 내 마당에는 매일 잉어 떼가 온다 무언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파도의 산을 넘어 내 마당에는 매일 은행나무가 성큼성큼 다른 길을 내고 마치 사막의 설치류가 오솔길을 만들듯 내 마당에는 매일 청개구리가 폴짝폴짝 담을 쌓는다 담 ..
김선우의 「낙화, 첫사랑」감상 / 나희덕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
전동균의 「동지 다음날」감상 / 문태준, 엄원태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
안도현의 「모과나무」감상 / 장철문 모과나무 안도현(1961~ ) 모과나무가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
이명수의 「꽃멜」평설 / 강영은 꽃멜 이명수 해 질 녘 모슬포 부둣가 한 귀퉁이 아들이 갓 잡아온 멸치를 할머니가 손질해 말리고 있다 은빛 물결 잦아들면 멸치는 숨죽이며 몸을 뒤척이고, 노을빛에 할머니가 꽃처럼 곱다 5천 원 주고 꽃멜 한 봉지 얻어 배낭에 넣었다 몇 백 마리 멸치 ..
최금진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평설 / 차성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최금진 장미를 라면 속에 넣고 끓여 먹은 적이 있다네 한 바구니 붉은 꽃잎들이 숨이 죽고 팔팔 끓을 때 너에 대한 혐오, 너에 대한 집착, 사랑의 양가성 설사를 하고, 설사에 향기가 없을 때 나는 문득 우리가 헤어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