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좋은 시 감상 (532)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이른 봄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나를 지탱해 주었고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그랬지, 그랬었지대문 밖에서는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
콩나물에 대한 예의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미리 쥐어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오늘 / 박건호 어느 날 나는 낡은 편지를 발견한다 눈에 익은 글씨 사이로 낙엽 같은 세월이 떨어져 갔다 떨어져 가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세월은 차라리 가지 않는 것 모습을 남겨둔 채 사랑이 갔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추억은 한 잔의 커피를 냉각시킨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따스한 것을 저만큼의 거리에서 그대 홀로 찬비에 젖어간다 무엇이 외로운가 어차피 모든 것은 떠나고 떠남 속에서 찾아드는 또 하나의 낭만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이미 떠나버린 그대의 발자국을 따라 눈물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발견한 낡은 편지 속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듯 그대를 보게 된다 아득한 위치에서 바라다보이는 그대는 옛날보다 더욱 선명하다 그 선명한 모습에서 그대는 자꾸 달라져 간다 달라지는 것은..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하나 꽃피어 조병화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말라 네가 꽃피우고 나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것 아니겠느냐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늘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르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