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좋은 시 감상 (532)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꽃이 되는 건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
술보다 독한 눈물 / 박 인 환 눈물처럼 뚝뚝 낙엽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
까뮈/ 이기철 그대가 노벨 문학상을 받던 해 나는 한국의 경상도의 시골의 고등학생이었다. 안톤 슈낙을 좋아하던 갓 돋은 미나리 잎 같은 소년이었다. 알베르 까뮈, 그대의 이름은 한 줄의 시였고 그치지 않는 소나타의 음역(音域)이었다 그대 이름을 부르면 푸른 보리밭이 동풍에 일렁..
너무 아픈 사랑/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
12월의 기도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
춤추는 달팽이 고진하 오동나무 숲으로 산책을 가려고 집을 막 나서는데 잠깐! 아내가 불러 세웠다. 부엌에서 나온 아내는 미나리를 씻다가 발견했다며 달팽이가 붙어 있는 미나리 순을 내밀었다. 산책 가는 길에 숲에 풀어 놓아주라고! 푸른 미나리 순에 붙어 꼼지락대는 아기 손톱보다 ..
앨리스의 사물들 서안나 3분에서 5분 동안 당신은 고장 날 것이다 썩은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커피를 마시면 3분 뒤에 나는 커피 마신 사람이 된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설탕이 없었다면 노예가 없었을 것이다 결핍은 결핍을 이해한다 식은 감정에 물을 주면 얼굴이 고장 났다 ..
저울 이영춘 그녀의 눈금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세상과 맞서 팽팽하게 세상을 당기던 몸 몸의 무게가 가랑잎 같은 깃털로 발가락을 세운다 새 길을 세우는 붉은 이정표 몇몇 손들이 저울추를 바로 세우려 바람의 무게를 빌어온다 무게는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파랗게 눈 뜬 우리들은 들..
좌파/ 우파/ 허파 김승희 시계 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고,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바빠도 벽에 걸린 시계 한번 보고 나서 말해라 세수는 두 손바닥으로 우편향 한번 좌편향 한 번 그렇게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