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좋은 시 감상 (532)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201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백윤석 문장부호, 느루 찍다2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
지상의 봄 강인한 별이 아름다운 건 걸어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들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이 지상에서 보도 블록 깨어진 틈새로 어린 쑥잎이 돋아나고 언덕배기에 토끼풀은 바람보다 푸르다 허물어낸 집터에 밤이 내리면 집 없이 떠도는 자의 슬픔이 이슬로 빛나..
달이 걸어오는 밤 / 허수경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
사근사근 첫눈이 / 이화은 눈이 온다 서울 여자처럼 사근사근사근사근 큰오빠를 홀린 서울 여자를 집안 어른들은 여시라고 했다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추었다고 했다 발자국이 없을 거라고 했다 사근사근사근사근 서울말은 우리들 눈썹에 머리칼에 손등에 닿자마자 솜사탕처럼 녹아내렸..
끝끝내 정호승 끝끝내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싸리꽃만 꺾..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 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
청춘 / 사무엘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
비밀의 문 이용헌 나무 위에도 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한 사내가 제 몸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하늘로 떠났다 주머니에선 하늘로 가는 차표 대신 한 장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쪽지에는 그가 사랑했던 이름들과 뜻 모를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몸만 남겨 두고 영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