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좋은 시 감상 (532)
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越冬 원무현 추운 날 여자를 데워주는 선물로는 極地의 얼음덩이 속에서도 종족번식을 멈추지 않는 물개 좆 껍데기로 만든다는 입생로랑가죽장갑 그것 이상 없다는 말, 피혁공장 다니는 순이에게 듣긴 들었으나 철수가 추운 순이에게 건넨 것은 눈보라 휘날리는 깡통시장 리어카에서 오천 원 주고 산..
일탈의 순간 김길나 보았다. 율포 바다에서 바다 밖으로 날렵하게 몸을 내민 팔뚝만한 숭어를 보았다. 바다의 수막을 뚫고 치솟아 오른 빛 부신 높이, 그 힘찬 도약을 바다에서 허공으로 월담하는 묘기, 그 벌거벗은 도발의 춤이 싱싱하다 싱싱할수록 생生의 마당, 그 바깥으로의 저 무모한 노출은 위태..
한나절 내린 비에 (외 1편) 허형만 한나절 내린 비에 연 사흘 쌓인 눈이 다 녹았다 늙은 감나무에 핀 저승꽃을 엷은 햇살이 한참을 어루만지다가 심심한 사내의 신발 끄는 소리에 놀라 새처럼 하늘로 포르르 오른다 지상의 꿈은 아직 축축하고 심심한 사내는 곧 다가올 저녁 냄새를 맡은 듯 가랑잎처럼 ..
호박죽 이창수 마루 끝에 앉은 외할머니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했다 늙으면 죽어야죠! 나는 외할머니의 말씀에 맞장구를 쳤다 그날로 외할머니는 머리를 싸맨 채 드러누웠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의 부지깽이를 피해 마루 밑에 숨었다 마루 밑 누렁이는 내 입술을 핥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홥환수 가지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 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더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
이런 시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 ! ㅎㅎㅎ
거리의 식사 이민하 하나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펼 때는 마찬가지 굶은 적 없는 사람도 며칠을 굶은 사람도 먹는 건 마찬가지 우리는 하나의 우산을 펴고 거리로 달려간다 메뉴로 꽉 찬 식당에 모여 이를 악물고 한 끼를 씹는다 하나의 혀를 가진 사람도 세 개의 혀를 가진 ..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
씨팔! 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앗을 살펴..